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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극단 춤추는 허리 <불만폭주 라디오>

자기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묵직한 말 걸기

글. 정수연 공연평론가

 

여기, 이야기꾼들이 있다!

참 오랜만이다. 공연을 보는 중에 마음이 울렁이고, 공연을 보고 난 후 벅찬 느낌을 가져본 지가 말이다. 도처에 세련된 공연이 넘쳐나고 잘생긴 배우들이 즐비하건만 그런 공연에서는 보기 힘든 것을 이 공연에서 잔뜩 봐버렸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봤다기보다 들었다는 게 맞을 거다. <불만폭주 라디오>라는 제목은 얼마나 절묘한지. 이 공연의 초점이 비디오의 스펙터클이 아니라 라디오의 목소리에 있음을 제목에서부터 분명히 짚은 셈이다. 조근조근 이어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폭주’할 만큼의 ‘불만’임에도 불구하고, 라디오의 사연처럼 차분하고 담담하다. 듣기의 파장은 점차 넓어진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무대 위의 배우들을 바라볼 때, 배우들의 몸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스펙터클임을 깨닫게 되는 거다.

 

극단 춤추는 허리가 쌓아온 연극적 내공은 이렇듯 자기를 이야기하는 방식에서 진가를 발휘한다. 여타의 장애인 극단에서 창작하는 서사의 재료도 역시 자기 이야기가 대부분이지만, 그 목소리에는 차별에 대한 고발이나 사회적 인식을 향한 계몽의 메시지가 강했더랬다. 그러다 보니 장애인으로서 개인이 겪는 일상은 메시지의 선명함에 가려져 오히려 피상적으로 말해지기 일쑤였다. 하지만 춤추는 허리의 작업은 온전히 개인의 일상과 경험에 집중함으로써 ‘나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물론 중증장애 여성이 겪는 ‘평범한’ 일상 역시 그 자체로 차별의 경험이자 반복되는 배제이다. 심지어 가장 가까운 사람들의 친절과 배려 안에도 이런 꼬챙이가 숨어있음을 보는 것은 너무 익숙해서 불편할 지경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런 현실을 성토하거나 고발하기보다는 그런 일상에 놓여있는 중증장애 여성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를 선택한다. 이 거리 두기는 때로는 웃음으로 때로는 먹먹함으로 관객에게 닿아 그대로 질문이 되어버리니, 이러한 말하기의 방식은 더욱 큰 사회적 목소리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삶이 담긴 구체적인 이야기는 계몽이나 주장보다 훨씬 힘이 세다는 사실을 이번 공연은 잘 보여주고 있는 거다.

 

이 공연에 등장하는 배우에게서 이야기꾼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발터 벤야민이 그랬다. 이야기는 경험을 주고받을 수 있는 능력이고, 이야기꾼은 듣는 사람에게 삶의 조언을 해주는 사람이라고. 배우들은 중증장애 여성으로서 겪는 일상을 경험의 차원으로 끌어올려 같은 일상을 사는 동료들에게, 그리고 이런 일상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말을 건넨다. 같은 장애를 가진 당신에게, 같은 여성인 당신에게, 같은 예술가인 당신에게, 같은 인간인 당신에게, ‘이상한 몸’을 가진 우리의 이야기가 들리나요. 다른 이의 도움이 꼭 필요하지만, 그 도움이 나의 중심을 빼앗을 수 없음을 선언하는, 그런 우리의 존재가 보이나요.

 
 

‘이상한 몸’의 아름다움

이야기를 하는 방식은 이 공연이 갖는 또 하나의 탁월함이다. 배우들은 각각 다른 유형의 장애를 갖고 있지만, 이를 역설적으로 활용하는 연출 방식에 의해 그들의 몸은 ‘다르게 말하기’의 전략이 된다. 일례로 발성이 어려운 배우가 DJ를 맡는 식이다. 무대 위에는 자막이 뜨고 배우는 자기의 방식대로 말을 한다. 놀라운 점은 시간이 흐를수록 비장애인 관객들도 ‘다르게 말하기’의 호흡에 익숙해진다는 사실이다. 처음에는 알아들을 수 없었던 배우의 말에 점차 익숙해지면서 나중에는 그 말의 리듬과 호흡이 들리니 말이다. 우리가 배워야 할 낯선 언어에는 외국어뿐 아니라 중증장애 여성들의 ‘다른 언어’ 또한 있음을 생각하게 되는 순간이다. 말이 어눌한 배우에게 대사 중심의 연기는 적절치 않다는 통념은 시원하게 깨져버린다. 

 

각각의 에피소드에서 배우들의 정체성은 장애인에서 장애 여성으로, 나아가 장애 여성 예술가로 구체화되는데, 그중에서도 마지막 에피소드는 이 공연의 압권이다. 예술가로서의 자기를 이야기하기. 자기를 설명하는 예술적 언어는 각자 다르지만, 나의 ‘이상한 몸’이야말로 나만의 예술임을 말로 몸으로 움직임으로 선언하는 순간 이들의 공연은 기존의 모든 화술을 뒤집어 언어의 지평을 넓혀버리는 예술적 도발이 된다. 그 도발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자기의 몸과 장애를 통해 자기다움을 선언하는 배우들의 몸짓은 그 자체로 감동이다. 장애인 예술의 예술적 가능성은 단지 ‘다른 몸’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다름이 자기의 언어가 될 때임을 이 작품은 잘 보여주고 있다.  

 

이 공연을 좀 더 다양한 관객들이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더 많은 관객에게 이 공연을 소개할 방법이 무엇인지는 구체적으로 모색해야 할 당면과제이다. 극장을 비롯해 공연이 이루어지는 물리적인 조건도 여러모로 아쉽다. 장애인 관객과 비장애인 관객에게 여러모로 효율적인 공간은 어떤 곳이어야 하는지 고민도 필요할 터. ‘불만폭주 라디오’에 신청할 불만이 있다면 이런 거겠다.

 
<불만폭주 라디오> 공연
포스터

<불만폭주 라디오>
극단 춤추는 허리, 2018.11.29.~12.2 이음센터 아트홀

극단 춤추는 허리의 정기공연으로 다양한 장애여성들의 사연을 접수하고 들려주는 라디오 컨셉으로 장애 여성들이 일상에서 경험하는 차별과 갈등을 담아 세 개의 이야기로 구성되었다.

정수연_필자

정수연
공연평론가, 한국예술종합학교 강사
konan29@hanmail.net

 

사진제공.극단 춤추는 허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