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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리포트

미국의 청년 장애 예술 활동 사례

장애 예술을 뒤흔들 새로운 세대의 출현

글. 문영민 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박사과정

 

<도전 슈퍼모델 아메리카>에서 우승한 농인 모델 나일 디마르코(Nyle Dimarco), 소리를 보여주는 예술가인 농인 사운드아티스트 크리스틴 선 킴(Christine Sun Kim). 소위 ‘힙’한 예술가로 미국 사회에 알려진 두 예술가는 장애를 가진 청년이다. 이들은 단순히 ‘젊은’ 장애 예술가로 존재하고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대 청년 세대가 향유하는 문화에 강하게 영향을 받아, 새로운 메시지를 낯선 매체를 통해 전달한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청년 장애 예술가의 서툰 작업을 지원하는 미국 사회의 지원 프로그램과 장애 예술가의 창작을 지지하고 연대하는 청년 예술가들의 네트워킹이다. 이 글에서는 케네디공연예술센터(Kennedy center for performing arts) 산하 VSA의 젊은 장애 예술가 지원 프로그램을 살펴보고, 이 토양 위에서 성장한 청년 장애 예술가들의 작업과 네트워크 양상을 살펴보고자 한다.

 
 

청년 장애 예술가 양성과 네트워킹 플랫폼 : VSA

케네디공연예술센터 VSA는 1974년 설립되어 현재 전 세계 장애 청소년 및 청년을 대상으로 예술 및 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다. VSA의 제1원칙은 “장애가 있는 모든 청소년은 양질의 예술 학습 경험을 누릴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이 모토 하에서 매년 700만 명의 청소년과 청년들이 시각예술, 공연예술, 문학에 이르기까지 VSA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VSA의 독창적인 프로그램으로는 VSA 국제 미술 프로그램(International Art Program for Children with Disabilities), VSA 신진예술가 프로그램(Emerging Young Artists), VSA 극작가 발견 프로그램(Playwriter Discovery Program), 그리고 국제 청년 솔로이스트 어워드(International Young Soloist Award) 등이 있다. 이 프로그램에는 장애 유아부터 만 25세의 청년까지 참여 가능한데, 재능 있는 젊은 미술가, 공연예술가, 극작가, 음악가 등에게 상금을 수여하고, 이들이 창작을 발표할 수 있는 수준 높은 무대를 제공하고 있다.

 

VSA가 프로그램을 통해 성취하고자 하는 목표는 단지 실력 있는 청년 장애 예술가들을 양성하는 것만이 아니다. VSA는 국외, 특히 아시아 지역의 청년 장애 예술가들을 발굴하여 이들이 서로 연결되어 네트워크를 확장할 수 있는 플랫폼 역할도 하고 있다. 청년 장애 예술가들이 서로의 작업을 확인하고 연결고리를 만들어내도록 하는 플랫폼을 통해 다양한 방식의 작업을 시도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협업으로 만드는 새로운 기회 : 극단 아포테타이 & 라크

뉴욕시에 기반을 둔 극단 아포테타이(Apothetae)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만드는 공연을 추구한다. 극단의 재정적, 환경적 이유로 배우, 행정가, 디자이너 모두를 장애인 극단 내에 고용하기는 어려운 상황에서, 아포테타이는 규모가 큰 비장애인 극단 라크(Lark)와 파트너십을 맺고 협업 작업을 진행하게 되었다. 두 극단은 장애인/비장애인 예술가들의 연례 컨퍼런스 개최, 장애인 극작가 펠로우십 등을 함께 진행하고있다. 타임워너재단(Time Warner Foundation)의 지원을 받는 극작가 펠로우십 프로그램을 통해 아포테타이는 장애인 작가가 자신의 내러티브를 공개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으며, 라크는 펠로우십에서 발굴한 희곡으로 창작 콘텐츠의 폭을 확장할 수 있게 되었다. 두 극단은 미디어 작업 <텔레톤!(Telethon!)>을 통해 장애인의 목소리를 무대 위에서 담아내는 등 다양한 영상 매체를 통해 콘텐츠를 확산하는 작업도 함께 시도하고 있다.

 
 

무대에서 무대로 전해지는 수어 예술 : ASL 슬램

ASL 슬램(ASL slam)은 청각장애인 공동체의 문학가, 공연예술가들이 창작한 작품을 라이브로 관객 앞에서 발표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기 위하여 2005년 설립되었다. ASL 슬램은 미국 수어(American Sign Language, ASL)로 시(詩)와 힙합, 공연예술 등의 완전한 형태의 공연과 농인 관객들이 자신의 내러티브를 수어로 즉흥적으로 표현하는 행사를 월별로 번갈아 개최하며 전 세계 농인 관객과 공연예술가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이 무대는 공연예술의 성격을 띠는 동시에 ASL 시 등 ‘구술 문학’이 확산하는 공간으로도 작용하고 있다. 이 공간을 통해 구전되는 가장 유명한 ASL 시 <빛이 있으라(Let There Be Light)>는 ASL 시의 기원과 내러티브가 담겨있다. 시와 신화를 아우르는 혼합 문학 형태의 ASL 시는 소외된 농인 공동체의 이야기를 공동체적으로 수집해 기록하는 역할도 수행한다. 이렇게 수집된 이야기는 ASL 슬램과 같은 수어 공동체 내에서 농인 문화 소멸에 저항하여 계속해서 전달되고, 미래 세대를 위해 활성화되고 있다. 그리고 이 역할을 담당하는 것은 기성세대가 아니라 청년 장애 예술가들이라는 점에 주목하여야 한다.

 
 

변화의 동인, 새로운 세대의 양성

우리나라에서도 90년대 문화융성기에 영향을 받은 20~30대의 청년 장애 예술가들이 이전 세대보다 더 큰 문화 예술적 소양을 가지고 다양한 영역에서 창작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장애 예술 단체가 아니라 개인 혹은 플랫폼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어 활동의 양상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미국의 사례에서 살펴보듯 청년 장애 예술가들의 창작활동은 향후 장애 예술의 지형을 변화시킬 중요한 동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장애 예술의 새로운 후속 세대를 양성하는 측면에서 미래 세대로서의 청년 장애 예술가의 작업을 발굴하고, 이들이 다양한 예술가와의 협업을 통해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플랫폼을 제공하는 등 청년 장애 예술가에게 적합한 새로운 지원체계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 이 글은 「장애 예술인 창작활성화 프로그램 개발 연구」(2018,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의 내용 중 일부를 수정 및 보완한 것이다.
 
극단 아포테타이와 라크 회의(2015)
[사진출처] www.theapothetae.org
라크 예술감독 로이드 서와 아포테타이 예술감독 그렉 모즈갈라
[사진출처] www.theapothetae.org

ASL 슬램
[영상출처] https://youtu.be/dmsqXwnqIw4
[사진출처] www.facebook.com/ASL-SLAM-161526577206967/

문영민_필자

문영민
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대학원에서 장애인 공연예술, 장애정체성, 장애인의 몸, 장애인의 건강 불평등을 연구하고 있다. 프로젝트 극단 0set 소속으로 공연 <연극의 3요소> <불편한 입장들> <나는 인간> 등의 공연에 창작자로 참여하여, 연극으로 장애인의 공연 접근성 문제를 알리는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saojungym@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