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젊은 예술가의 태도가 일깨운 삶에 관하여

“재미를 보기에 희망을 가진다”

글. 고혜실 로사이드 정진호 창작자 어머니, 작가

 

그는 오늘도 새로운 캐릭터를 그렸다며 내게 그림을 내민다. 그는 분명 자신의 세계관에 새 등장인물을 추가하며 새로운 스토리를 상상하고 있을 것이다. 내가 보기에 캐릭터는 전에 본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나의 반응을 알아챈 그는 못 푼 수수께끼를 알려주듯 자부심 가득한 표정을 하고 아주 디테일한 부분까지 장황하게 설명한다. 어떤 이는 이 모습을 보고 그를 기꺼이 학자라 칭하기도 했다. 그의 학문이 설사 그만의 학문일지라도 학문에 임하는 자세가 어찌 다른 학자님들의 그것에 뒤지겠느냐는 것이다. 그렇게 그는 학자의 자세로 오늘도 그의 학문을 연구하는 중이다. 

 

한때 나는 그의 최측근으로서 조교라도 되어 볼 양으로 그 학문에 덤벼들었다. 그러나 며칠을 못 버티고 두 손을 들고 말았다. 그의 학문은 방대했으며 복잡다단했고 학자님의 설명은 즉흥적이고 변주가 많았으므로 해석 불가였다. 가끔 기웃거리는 사람만 있을 뿐 그의 학문은 오롯이 그만의 학문이 된 것이다. 그가 외로워 포기하지 않을까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는 언제 어디서든 누가 뭐라든 상관하지 않고, 아무 대가도 바라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할 것을, 즐겁게 할 수 있는 미덕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그에게는 이런 미덕이 있다. 어느 젊은 예술가는 이것이야말로 예술가가 꼭 갖추어야 할 것이라며 부러워하였고, 일군의 그들은 지금까지 장애라 써 놓은 것을 미덕이라 읽어 주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도 그의 세계에 첨벙 뛰어들 수는 없다. 그저 그의 세계를 기웃거리고, 그의 주변을 서성이며 불현듯 조우하기를 기다리는 듯했다. 그들의 예술 세계와 그의 미덕 있는 세계가 크로스오버 되는 어느 지점을 찾아 헤매며 우주를 유영하는 막막함. 이 두 아웃사이더 그룹의 만남은 그래서 좀 뿌옇고 아득하게 느껴졌다. 과연 그들은 만나기나 할까? 만난다면 불꽃이 튀기는 튈까? 어느 세월에? 처음엔 그랬다. 처음에는. 

 

아마도 내가 생각한 예술은 영감이 불꽃처럼 튀어 오르고, 모두가 우러러 마지않는 걸작을 만드는 것이었나 보다. 그러나 이 생각은 그 예술가들을 만나서 같이 기웃거리고 서성이고 대화하면서 바뀌어 갔다. 그들은 조급하지 않았고 아니 조급증을 낼 무슨 결과를 기다리지 않았다. 스파크 따위 안 터지면 뭐 어떤가? 설사 만나지 못하고 이렇게 계속 유영만 한대도 저기 어딘가에는 나처럼 우주를 떠다니는 유목민이 있다는 사실 만으로 기쁘지 아니한가? 너도나도 이 세상에 태어난 한 인간일 따름이라는 자유롭고 평등한 사고방식과 태도. 예술은 걸작으로 남을 수는 있겠지만 그것은 예술의 껍데기라는 것. 예술의 알맹이는 지금 우리의 태도에 있다는 것. 이 태도를 나는 중년이 되어 어린 예술가들에게서 배운 것이다. 그것은 행운이었다. 

 

몇 해 전에 그는 이런 시를 썼다.

나는 괴물

정진호

나는 괴물
재미와 행복에 미친 괴물
영화와 게임 신화를 좋아하는 괴물이다

그림에 미치고
환수나 알아
천사에 미쳤다

그런 괴기한 것을 사랑하는 나 역시
괴물

그러나 그렇기에 나는 행복해
행복하기에 재미를 보고
재미를 보기에 희망을 가진다

인간이란
특이한 괴물

 

이것을 보고 있자니 두돌이 갓 지난 그를 업고 이 병원 저 병원으로 돌아다닐 때가 생각났다. 어느 병원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이 애가 치료되지 않고 그대로 자라면 괴물이 되는 거지요. 나에게 그 말은 천형으로 다가왔고 그래서 애 앞에서 무슨 망발이시냐 항변도 못 한 채 눈물만 뚝뚝 흘렸었다. 그때 너 그 얘기를 듣고 있었던 거니? 그런데요, 선생님. 우리 행복한 괴물이 되었는데 어쩌죠? 무시무시한 괴물이 아니라 행복한 괴물도 될 수 있다는 건 왜 안 알려주셨어요? 우린 정말 괴물이 되어 죽는 줄 알았잖아요. 이제는 소용없는 항변을 읊조려본다. 또 이것은 아마도 그에게 최초의 장벽이었을 내가 보내는 사과의 편지이기도 하고.

 

그의 말마따나 인간이란 모두 얼마간 특이한 괴물일 따름이다. 나도 기꺼이 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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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혜실
날것의 창작집단 로사이드에서 창작자로 활동하는 정진호의 엄마다. 그녀는 버려지는 것으로 쓸모를 만드는 업사이클링, 적은 수입으로도 평온하고 지속가능한 삶, 돈 없이 잘 노는 방법, 가장자리로 밀려나는 것들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다. 요즘은 서부장애인복지관의 창작공방에서 손놀이 워크숍을 함께하고 있다.
hskochung@gmail.com

 

사진. 고혜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