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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지희킴 미술작가

우연히 혹은 필연적으로, 그 자유로운 드로잉의 세계

글. 류동현 미술 저널리스트

 

얼마 전 찾은 미술 전시에서 독특한 작업을 발견했다. 꽤 많은 작가의 작품이 출품된 그룹 기획전에서 유독 이 작업이 눈에 띄었다. 긴 나무 프레임에 일렬로 35밀리 슬라이드 필름을 넣고, 프레임에 설치된 돋보기로 관객이 슬라이드 필름 속 그림을 찬찬히 확대해서 보는 형식의 작업이었다. 프레임 사이에 설치된 조명 아래 흥미로우면서도 약간은 ‘엽기적’이기도 한 드로잉들이 일렬로 펼쳐져 있었다. 그 옆의 높은 벽면에는 커다란 캔버스에 컬러풀한 색과 선으로 자유로이 흩뿌린 드로잉 작업이 걸려 있었다. 깔끔한 라인의 인물 드로잉이 프레임 속 드로잉 작업과의 연관성을 드러내고 있다. 커다란 캔버스 작업과 자그마한 슬라이드 필름 작업, 추상의 색과 구상의 선이 공존하는 작업이 흥미로웠다. 웹진 [이음] 인터뷰를 통해 이 작업의 주인공 지희킴 작가의 작업세계에 대해 들어볼 수 있었다.

반갑다. 과거에 했던 인터뷰 글을 읽으니, ‘작가, 예술가’라는 소개를 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요즘은 어떤가?

(웃음) 여전히 ‘작가’라는 단어가 낯설다. 아직도 자신을 소개할 때 “미술 작업을 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드로잉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라고도 소개한다. 드로잉이라는 방식이 과정 중심의 작업인데, 스스로 여전히 작가가 되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 또한 ‘미술을 통해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소개하니, 피차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웃음) 미술을 시작하게 된 동기가 궁금하다.

사실 대부분의 미술가가 그렇듯이, 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그리고 나름 잘 그렸던 것 같다(웃음). 그래서 별 고민 없이 자연스레 예고와 미대에 진학해 미술을 전공했다. 대학을 다니고 졸업하던 2000년대 중반의 한국 미술계는 꽤 들끓고 있었다. 미술시장은 호황이었고 다양한 작가들의 전시와 흥미로운 미술 행사들이 많이 열렸다. 이런 상황에서 젊은 작가들이 이른바 ‘입봉’하는 기회가 많이 주어졌다. 나 또한 당시의 미술 트렌드를 좇으면서 다양한 전시에 참여할 수 있었다. 어린 나이에 전시도 하고 관객들이 작품에 관심을 가져주니 이 모든 것이 재미있던 시절이었다. 별 고민 없이 미술을 시작했지만, ‘작가’라는 직함이 붙으니(어색하기는 했지만) 열심히 작업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과거 2000년대 중반의 작업이 기억이 난다. 선명한 색상의 재미있는 회화 작업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 선보이는 여러 작업과는 차이가 보인다. 

나름 국내 미술계에서 자리도 잡고 있었는데, 문득 내 작업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작품이 천편일률적이랄까. 자기복제와 함께 이른바 매너리즘의 작업으로 흐르고 있다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변화가 필요했다. 어렸을 때부터 외국으로 유학을 떠나고 싶었는데, 바로 그때가 된 것 같았다. 영국 런던의 골드스미스대학교로 떠났다. 그때 결심을 했다. 나의 작업 스타일을 비롯해 모든 것을 바꾸겠다고. 그렇지만 평생 한 생각과 방식이 쉽게 바뀔 수 있겠는가. 쉽지 않았다. 영어 습득에도 어려움이 있었다. 다른 학생들이 나름 자유로이 소통할 때 이를 이해하는 것도 힘들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악전고투하고 있을 때 수업 커리큘럼 중 ‘방문 수업(visiting tutorial)’을 하게 되었다. 런던을 중심으로 작업하는 작가를 학생이 선정해 학교 측에 신청하면, 학교에서 작가와 학생을 연결해 주는 프로그램이었다. 스튜디오를 같이 쓰는 학우가 덱스터 달우드(Dexter Dalwood)라는 작가를 추천했다. 사실 작가에 대한 정보가 별로 없었던 상황에서 신청을 했다.(덱스터 달우드는 영국 브리스톨 출신의 유명 작가로 2010년 터너 프라이즈 최종 후보에 올랐다-필자주) 달우드 작가가 작업실에 와서 내 기존 작업을 보았는데, 이에 대해서는 별 이야기 없이 2분 동안 그림을 그려서 보여달라고 했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가타부타 별 말 없이 그림을 그리라고 하니 당황할 수밖에. 그런데, 신기하게도 지난 밤 꾼 꿈이 생각났다. 2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꿈의 내용을 드로잉으로 그려냈다. 달우드 작가가 이를 보더니, ‘너의 작업이 바로 이것이다. 기존 작업과는 달리 드로잉이 살아있지 않느냐’라고 칭찬을 했다. 또다시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때가 내 작업이 변화하는 데 있어 변곡점이라고 할 수 있다.

주목받고 있는 <북드로잉> 시리즈는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작업의 변화에 대한 실마리는 얻었지만, 여전히 ‘영어’라는 언어는 장벽이었다. 책을 읽어도 남들보다 시간이 더 걸렸다. 자연스레 도서관에서 머무는 시간이 많았다. 오랜 시간 도서관에 남아 책을 읽었지만, 쉽게 언어 실력이 좋아지지는 않았다. 심리적으로 벽에 막혀있는 듯했다. 그러던 와중에 불현듯 페이지 속의 글자들이 하나의 디자인 단위로 보였다. 글자의 내용이 아닌 페이지와 텍스트의 디자인이 아름답게 보였다. 새로운 작업의 방향이 보이는 듯했다. 가장 디자인적으로 아름다운 페이지에서 단어 하나를 찾아, 개인적인 기억의 편린을 좇았다. 달우드 작가의 조언이었던 ‘직감에 따른 살아있는 드로잉’이 책의 페이지 속에서 생명력을 얻게 된 것이다. 책을 출간함으로써 생기는 공적인 지식의 영역을 내밀한 사적 기억의 영역으로 바꾸는 것도 재미있었고, 대부분의 필자가 남성인 영문 학술서에 여성 작가의 감성을 풀어내는 것도 흥미로운 지점이었다. 바로 그날로 집에 귀가해 학교 도서관과 동네 커뮤니티 도서관에 책을 기부해달라고 메일을 보냈다. 그리고 도서관에서 300권의 책을 보내주었다! 한국에 온 지금도 이 책들에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긴 호흡으로 진행하고자 한다. 

얼마 전 어느 미술관에서 ‘슬라이드’ 작업을 보았다. 돋보기로 찬찬히 보았는데, 몸에 대한 이미지가 많았다. 잘린 신체 등 약간 ‘엽기적’인 형상들도 볼 수 있었다. 이 작업에 대한 소개도 부탁한다. 

한국에 돌아와 계속 <북드로잉> 작업 등 다양한 작업을 진행했다. 지난 연말, 아웃사이트에서 개인전 <겹의 기호들>을 열면서 작업이 많이 변했다. <북드로잉>을 넘어, 커다란 캔버스 드로잉을 진행했다. 그리고 이 캔버스를 넘어서는 벽에 물감을 흩뿌리는 드로잉을 시도했다. 개인적인 기억에 초점을 맞추어 전시장 전체를 드로잉으로 채웠다. 개인적으로 신체에 대한 한계를 줄곧 머릿속에 넣고 있었기 때문에 작업 속에서 공간을 크게 확장하는 작업을 염두에 두지 못했는데, 이번에 작업이 변하면서 진행할 수 있었다. 새로운 경험이었다. 35밀리 슬라이드 작업은 2013년부터 2018년까지 진행한 드로잉 중 80개를 솎아내서 제작한 연대기적 작업이다. ‘기억의 접촉’이라는 콘셉트로 각 작품이 서로 영향을 끼치는 배열에 신경을 썼다. 제목을 <우울과 재치가 교차하는 지점>이라고 지었다. 골라서 작품을 보니, 나도 신경을 안 썼는데 몸에 대한 작업이 많음을 알게 되었다. 어렸을 때부터 아름다운 몸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요즘 세상이 그렇지 않은가? 몸에 대한 광풍이라고 할 정도로 피트니스 센터, 다이어트 식품, 치료 등 건강과 젊음에 대한 관심이 넘쳐나고 있다. 

나 또한 기억이라는 주제로 작업을 진행해왔는데, 시간이 지나서 작업의 흐름을 보니, 이 기억에 몸이 가지고 있는 비중이 높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러 비평가가 나의 작업에 대해 ‘페미니즘’의 개념으로 종종 설명했다. 직접적으로 ‘페미니즘’을 언급한 작업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아니라고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생각해 보니, 나 자신이 아시아인이자 여성이고, 나의 얘기가 곧 이들 정체성에 대한 내용을 담을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의도적으로 이러한 정체성을 무기로 작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레 그러한 개념이 나올 수 있다면 이 또한 인정할 수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 기억이라는 주제로 작업을 진행하면 할수록 우연히, 혹은 필연적으로 지금까지 겪어온 몸의 이야기가 들어갈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좀 더 열린 마음으로 자유로이 인정하고 작업을 확장하고자 했다. 프레임 밖으로 튀어 나가는 물감, 선과 색, 책을 중심으로 확장되고 축소되는 형식, 나의 몸에서 시작되는 다양한 기억들을 지난 전시에서 마음껏 펼칠 수 있었다. 

 

이야기를 듣고 나니 작업 속에서 보이는 몸에 대한 관심이 이해가 간다. 그리고 드로잉의 형식으로 작업이 드러난다. 작가에게 드로잉이 어떤 의미가 있는가?

개인적으로 우연성, 즉흥성, 직감을 신뢰하는 편이다. <북드로잉> 시리즈도 우연과 직감이 모여 필연적으로 작업화된 듯하다. 드로잉은 나에게 이러한 우연성, 즉흥성, 직감을 풀어내는 데 잘 맞는 방식이다. 이러한 드로잉을 통해 ‘나’라는 그릇에 맞는 뚜껑을 찾은 것 같다. 과거에는 그 뚜껑이 컸던 것 같다. 과거의 작업이 형식적이고 계획이 개입되어 있었다면, 지금은 좀 더 자유롭고 작업의 ‘과정’ 속에서 내 작업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곳곳에서 드로잉 워크숍도 진행한다.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지금까지 꽤 많은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작업실의 문제가 아니라 나에게는 여러 사람과의 소통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영향을 받고 성장하는 것을 느낀다. 드로잉 워크숍은 레지던시 프로그램같이 같은 작가들과의 만남에서 좀더 확장된 것이다. 비미술인들과의 드로잉 워크숍은 단순히 미술적 기술의 문제를 넘어 드로잉이라는 장르를 통해 서로 이야기하고 소통하는 것이다. 나는 사람들 사이의 매개자, MC의 역할이었다. 사람들 사이의 소통으로 채워진 워크숍의 느낌이 너무 좋았다. 국내뿐만 아니라 타이완 등 다른 나라에서도 진행했는데, 좀 더 확장하고픈 생각이 있다. 

앞으로의 계획은?

7월에 디스위켄드룸에서 드로잉 퍼포먼스를 진행한다. 내 작업의 세계가 프레임을 넘어 직접적인 관객과의 소통까지 확장된 것이다. 3일간 두 시간 정도 진행할 계획이다. 그 외에도 참여할 전시, 레지던시 프로그램들이 기다리고 있다. 항상 작업을 통해 나의 솔직한 목소리를 내고, 날 것의 드로잉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자 한다. 나의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상상력이라는 요소를 통해 잘 전해졌으면 좋겠다. 

겹의 기호들4, 종이에 과슈, 잉크
Signs Under Skin 4, gouache, ink on paper, 131x231cm, 2018 ⓒJihee Kim 2019
우울과 재치가 교차하는 지점
The intersection of depression and wit, detail2 670 ⓒJihee Kim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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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희킴 
동국대학교 서양화전공 학사, 석사과정 졸업 
골드스미스대학교 대학원 순수미술 석사과정 졸업 
이화여자대학교 조형예술대학 서양화과 박사과정 수료 
금호미술관 금호창작스튜디오, 난지창작스튜디오, 경기창작센터, 인천아트플랫폼, 타이페이 아티스트 빌리지, 타이완 The Pier-2아트센터 외 다수의 레지던시 프로그램 입주작가  
《겹의 기호들》(2018 아웃사이트), 《쪽수없는 페이지들》(2018, The Pier-2아트센터), 《금호영아티스트:16번의 태양과 69개의 눈》(2019, 금호미술관) 외 다수의 개인전, 그룹전과 워크숍 개최 
골드스미스대학교 Wardens Purchase Prize 수상(2013), 소마미술관 드로잉센터 아카이브 등록 작가(2013), 15회 금호영아티스트 선정(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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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동현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고고미술사학과와 성균관대학교 언론정보대학원을 졸업했다. 미술전문지 [아트](현 아트인 컬쳐), [월간미술] 기자로 일했으며, 문화역서울 284 전시큐레이터를 역임했다. 『미술이 온다』(오픈하우스, 2015), 『런던-기억』(책읽는 수요일, 2014) 등의 저서가 있다. 전시 <프로젝트284: 시간여행자의 시계>(문화역서울 284, 2017), 《페스티벌284: 美親狂場》(문화역서울 284, 2015), 평창 동계올림픽 특별전 <한국 현대미술의 하이라이트>(평창 문화ICT관, 2018) 등을 기획했으며, 개인전 《미술기자 Y씨의 뽕빨 111번》(워크룸, 2009)을 열었다. 현재 미술 저널리스트 겸 전시기획자, [페도라프레스] 편집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fedorapress@naver.com

사진. 박영균 미술작가
작품사진 제공지희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