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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장애인 예술과 예술교육

조력자의 역할, 어디서 시작하여 어디서 끝날까

글. 김인규 서천발달장애인미술창작협동조합 대표

 

지역의 발달장애 친구들과 미술활동을 해온 지 10년이 되어간다.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녀석들이 이젠 20대가 되었다. 주말이면 함께하는 일상의 일부가 되었다. 새로운 아이들이 들어오기도 하고 떠나기도 했지만 여전히 그때 그 친구들이 주를 이룬다. 

 

발달장애 아동들이 참여하는 미술치료, 혹은 미술활동을 지켜보다 이건 아니다 싶어 나선 것이 그 출발이 되었고 지금까지 하게 될 줄은 몰랐다. 미술활동은 무엇보다도 훈련이나 치료가 아니라 그들이 가진 표현 욕구를 발산하고 즐길 수 있는 활동이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시작하였다. 그렇게 한 미술활동이 해를 거듭하자, 생산물이 쌓여갔고 그것을 토대로 전시를 시작했다. 전시는 발달장애인의 표현을 지역사회의 비장애인들과 함께 나누는 소중한 기회가 되었을 뿐 아니라, 작품 판매도 이루어져 미술활동을 지속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러다 함께 하던 녀석들이 하나둘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시작하자 고민이 생겼다. 성인이 되어도 미술활동을 지속해야 할까, 그럴 여건을 갖춰야 하는 걸까. 미술활동에 참여해온 친구들의 대부분은 중증 장애를 가지고 있었을 뿐 아니라, 지역의 여건상으로도 다른 직업활동을 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나마 이런 활동의 기회가 일상을 채울 수 있는 것 중의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술활동을 통해 생산된 이미지를 가공하여 상품으로 판매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고, 그것을 토대로 자립적인 미술활동의 기반을 갖출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게 발달장애인미술창작협동조합을 설립하게 되었다. 일이 커진 셈인데 해가 갈수록 이게 그리 쉽게 될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있다. 

 

난관은 조합원인 장애 당사자들은 조합이란 게 무엇인지 모르고, 여기서 무엇을 생산하고 판매하고 하는 일에 대해 자각하거나 직접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다만 재미있게 미술활동을 할 뿐이었고 수익이 생기면 좋은 일일 뿐이었다. 제품화할 수 있는 이미지를 생산하거나 제작하는 일에 어떠한 의지나 관심을 갖기 어렵다는 것은 당연하였다. 그것은 순전히 비장애 부모나 활동가의 몫이었다. 물론 애초에 당연히 그렇다고 생각하고 시작한 일이었다. 지역에 활동가가 있을 리 만무하기에 결국 부모의 몫이며, 부모들이 함께 힘을 모아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그런 부모들의 관심과 역할을 기대하며 일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아이들이 성인이 되고 나이를 들어가자 부모들의 관심은 오히려 멀어졌고, 그것을 주도한 나의 일이 되어 가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나는 이 지점에서 발달장애인들의 경우 미술활동에 대해 다시 고민하고 있다. 과연 이를 앞으로도 지속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밀려온다. 내가 이를 놓지 못하고 지금까지 이어온 이유는 주말마다 만나는 이런 미술활동이 그들에게 즐거움이라는 것이었다. 그래도 집 밖에 나와 모여서 무언가 함께 하고, 함께 간식을 먹는 것만으로도 좋은 일이다. 그렇지만 한발 더 나아가 생산적인 활동으로 연결하려는 순간, 그것은 장애 당사자가 아닌 그 누구, 좀 더 전문적인 역량이 있는 사람들의 역할이 필연적으로 요구된다는 것이다. 혹시 함께할 전문 활동가가 있을까 알아보기도 했지만, 지역에서 그럴만한 활동가를 구하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그들의 인건비를 지속적으로 확보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할 따름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부모의 역할은 절대적인데 부모도 그 끝없는 길을 계속한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최근에 발달장애인의 예술활동에 대한 관심이 증폭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한동안 바리스타 직업 교육이 붐을 일었던 상황하고 비슷하다는 느낌이 든다. 사실 많은 발달장애인이 바리스타, 혹은 그와 비슷한 서비스 활동 류의 직업활동도 쉽지 않다는 현실적인 한계를 사람들이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다. 결국 좀 더 자유로울 뿐 아니라, 장애의 특성을 오히려 강점으로 담아낼 수 있는 예술활동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것은 필연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그것은 한 발달장애인이 예술가로서 활동하는 것하고는 전혀 다른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장애 당사자가 결코 스스로 그것을 개척하거나 수행해갈 수 없다는 점이다. 장애의 정도가 미약한 소수 이외에 대부분의 발달장애인은 그 활동 전체에 대한 그 누군가의 매니지먼트를 필요로 할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그중 성공적인 몇몇 장애인은 결국 부모나 혹은, 부모와 결합한 전문가들의 지원 혹은 협업 속에 가능했을 것이며, 앞으로도 계속되는 뒷받침을 요구할 것이다. 

 

반면 대다수 발달장애인의 경우 예술활동에 대한 향수는 이러저러한 복지 기관들을 통해 이루어진다. 대부분 무슨무슨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수행되며, 문화센터의 소비자처럼 제공된 시간과 프로그램을 소비하는 형태로 진행된다. 여가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그것이 장애 당사자의 삶과 일상에 어떤 생산적인 역할을 하는지는 잘 알 수 없다. 

 

내가 처음 미술활동을 시작할 당시는 지역의 장애인부모회를 중심으로 활동을 하면서 아이들과 부모가 함께 모이는 공동체적인 지향이 자리하고 있었다. 부모들은 아이를 데리고 와서 함께 하였고 서로 의지가 되었다. 그렇지만 아이들이 성장하고 부모들의 관심이 급속히 줄어들었다. 이제 대부분 친구들이 활동보조인들과 함께 왔다가 돌아간다. 집에 있는 것보다 나으니 그렇게 오는 것이다. 미술활동이 유휴 시간을 소비해주는 문화 소비재처럼 여겨지기 시작한 것인데 나의 입장에서는 그 점이 자꾸 안타깝게 느껴진다.

 
201909_issue2_profile

김인규
미술 교사를 했으며, 미술작업을 하면서 지역에서 발달장애 아동·청소년들과 오랫동안 미술활동을 해왔다. 
kig8142@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