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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예지 피아니스트

악보 읽는 손끝에서 일으킨, 작은 혁명

글. 송현민 음악평론가

 

음악은 청각의 예술이다. 하지만 시각장애 음악가들에겐 손끝의 촉각을 깨우는 일로 시작한다. 그들은 점자로 된 이른바 ‘점자악보’를 손끝으로 먼저 읽고, 음악의 그림을 머릿속에 완벽히 넣은 후 연습에 임한다. 최종 무대는 이러한 지난한 과정을 통해 완성된다. 이러한 점자악보는 시각장애 음악가의 입장에서 보면 음악으로 안내하는 친절한 악보이다. 하지만 두 살 때 시력을 잃은 후 오랜 시간 점자악보를 통해 음악을 배우고 연주해 온 피아니스트 김예지는 몇 년 전 ‘다차원 촉각 악보’라는 것을 개발했다. 분명 어떤 불편함 때문이었고, 그 불편함은 김예지 개인뿐 아니라 시각장애 음악가 전체가 겪는 불편함이었다. 이번 인터뷰를 통해 필자도 점자악보의 많은 부분을 ‘오해’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오해’를 ‘이해’로 바로 잡아주는 데 김예지의 경험담과 다차원 촉각 악보가 큰 역할을 했다. 

 

 

사람이나 사물과 처음 접할 적에 첫인상을 어떻게 느끼는가.

소리다. 사람이라면 목소리. 생명이 없는 사물에게도 잔잔한 바람을 통해 느껴지는 소리가 있다. 그다음이 후각이다. 사람과 사물마다 고유의 향이 있다. 그리고 특정 감각으로 분류할 수 없는 어떤 ‘느낌’이란 게 있다. 이 세 가지가 복합적으로 되어 사람과 사물의 분위기를 전해준다.

손끝에 피아노 건반이 처음 닿았던 날을 추억한다면?

일곱 살 때였다. 피아노를 어루만져보니 작은 내가 더 작게 느껴질 정도로 엄청나게 큰 악기였다. 한편으로는 이 악기를 통해 음악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는 기대와 설렘이 느껴졌다.  

한 작품을 연습하고 무대에 오르기까지 준비와 연습 과정이 남다를 것 같다.

가장 힘든 숙제는 점자악보를 구하는 것이다. 제일 먼저 세계 각국의 점자도서관을 검색해 악보가 점역되어 있는지 살펴본다.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럴 경우 악보를 구입해 복사본을 음악 점역사에게 보낸다. 일본에는 음악 점역을 전문으로 하는 봉사단체도 있는데, 이곳을 주로 이용하는 편이다. 

 

그들의 음악은 손끝에서부터 시작된다

점자악보를 만드는 일을 ‘음악 점역’, 악보 번역을 전담해 점자 악보를 만드는 사람을 ‘음악 점역사’라 부른다. 이들은 단순히 악보에 있는 음표, 빠르기, 셈여림 등을 그대로 옮기기보다 악보를 분석한 뒤 점역한다. 점자악보 속의 음악 기호는 음악 점자 표기 규칙에 따라 6개의 점으로 표현된다. 예를 들어, ‘도’는 1번, 4번, 5번의 점이 돌출되도록, ‘레’는 4번, 5번 점이 돌출되도록 해 각각의 음계를 점자로 표현하는 것이다. 

 

점자악보가 되어 오는 시간은 어느 정도 걸리는가?

점역을 요청해도 기한을 약속받긴 힘들다. 빨리 도착하는 악보보단 가급적 가장 정확한 악보를 수중에 넣는 게 나의 바람이다. 

요청한 악보가 오면 그다음은 무엇을 하는가?

비장애인들은 처음 보는 악보를 초견(악보를 처음부터 바로 연주)을 통해 훑어 나간다. 곡의 흐름과 대강이 파악되면 자신만의 디테일한 해석을 넣어 외워 나간다. 하지만 시각장애 음악가들은 정반대의 수순을 따른다. 처음부터 꼼꼼히 외우는 과정을 거쳐야만 그다음 연습이 가능하다. 단순히 외우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 오른손으로 연주하는 성부와 왼손의 성부를 각각 외우고 머릿속에서 합쳐가며 음악을 그려가야 한다. 셈여림, 음색 등 세심한 표현들도 근육 하나하나가 기억하게 해야 한다. 

이 같은 과정을 통해 무대에 오르기까지 대략 며칠 정도 걸리나?

급하게 올라야 하는 무대라면 하루 만에 외우기도 한다. 어려운 대작은 8~9개월까지 걸리기도 하고. 예전에 습득한 작품들과 비슷한 시대 양식(예를 들어 고전주의나 낭만주의)이라면 암기에 속도가 더 붙는다. 30여 년 동안 이렇게 해왔기 때문에 지금은 시간을 압축하고 조절할 수 있는 나만의 노하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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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자악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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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차원촉각악보(네 번째 버전)

 

음악을 더 깊고, 명확하게 보여주는 다차원 촉각 악보

김예지가 개발한 다차원 촉각 악보를 보기 전, 점자악보가 궁금했다. 그녀가 보여준 악보는 독일 작곡가 슈만이 가곡으로 작곡하고, 리스트가 피아노곡으로 편곡한 <헌정>이었다. 

김예지가 손끝으로 제목을 읽고, 제목 하단에 새겨 있는 점자를 읽어나간다. 작품에 대한 간단한 설명과 역사가 나온다. 슈만이 작곡한 원곡에 수록된 독일어 가사도 적혀 있다. 그리고 점역자가 연주자를 위해 넣은 참고 사항이 나온다. 실제로 만져보니 손끝에 볼록한 점들이 톡톡 걸린다.    

 

점자악보와 비장애 음악가의 악보와 차이점은 무엇인가?

대표적으론 높은음자리표나 낮은음자리표가 없다. 우리는 이것을 ‘길표’라 부른다. ‘첫째길 도’ ‘둘째길 도’ 등의 용어는 점자악보에서만 사용하는 것이다. 점자악보는 사실 악보화를 완벽히 번역했다기보단 점역사가 음악을 설명으로 풀어낸 것이라 보면 된다. 20세기로 올수록 음악의 선율과 화성은 복잡해지고 다양해진다. 하지만 점자악보는 이 ‘모든 것’이 담겨 있지 않고 누락된 부분도 많다. 악보의 모든 것을 점역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다. 

 

오늘 점자악보를 처음 보았다. 악보를 고스란히 옮겨 놓은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점역 시에 점역사의 주관이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가 보고 읽은 음악을 점역하는 것이지 악보를 그대로 옮기는 객관적인 번역이 아닌 것이다. 여기서부터 다차원 촉각 악보를 개발하게 된 동기가 나온다. 악보에는 복잡한 부호와 기호들이 많다. 예를 들어, 독립성이 강한 선율들을 동시에 결합하여 대위적인 효과를 사용한 대위법 음악의 경우, 음표가 일구는 그 복잡한 화성의 구조는 직관적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점역자의 설명에 의존하여 ‘대략’ 대위법이라는 것만 알게 되는 것이다. 나 역시 20여 년 이상 점자악보를 사용해왔기 때문에 이러한 문화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렇다면 다차원 촉각 악보를 통하면 악보에 담긴 모든 정보를 읽을 수 있는 것인가?

어느 날, 비장애 음악가들이 보는 악보가 어떻게 생겼는지 너무 궁금했다. 그래서 도움을 얻어 그 체계와 원리를 파악해보니 악보를 통해 음악의 구조가 명확히 보이는 것이었다. 점자화되며 압축되고 암호처럼 처리된 음의 높낮이와 성부는 물론 음표들을 연결하는 이음줄과 붙임줄 등등 세부적인 것들이 명확히 보였다. 나도 저들처럼 악보의 정보를 접하고 파악할 수 없을까 고민하던 중 나만의 악보를 개발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전히 내 필요에 의한 시작이었다. 

 

다차원 촉각 악보는 점역사의 주관에서 벗어나, 연주자의 직관성을 위한 악보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이미 수많은 작품들이 점역화되어 악보로 나와 있다. 그것이 쌓아온 역사와 시간이 있다. 어떻게 보면 점자악보 기술은 오늘날 최고로 발전되어 더 이상 개발과 연구의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된다. 

그렇다면 본인이 개발한 다차원 촉각 악보의 존재 의미는 무엇인가?

오해의 소지가 될 것 같아서 미리 말하면, 내가 개발한 다차원 촉각 악보는 점자악보의 ‘대체물’이 아닌 ‘보완물’이다. 악보의 선택권을 넓히는 것이다. 점자악보에는 점역사가 안내하는 친절함이 있다면, 다차원 촉각악보에는 작품의 객관성을 담보하는 정확성이 있는 것이다. 점역 시 누락된 정보를 보충하고, 곡을 보다 더 깊게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다. 음악가들의 ‘해석’은 악보에 담긴 정보에 보다 깊이 빠져들 때 생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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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력이 만들 길에 소통’이라는 꿈이 놓여 있다

다차원 촉각 악보는 2018년 특허청으로부터 허가를 받은 상태이다. 김예지는 미국 유학 시절, 이를 위한 아이디어를 논문 「An Introduction To Tactile Stave Notation(촉각 보표 표기법 도입)」으로 입증하며 다차원 촉각 악보 개발의 디딤돌을 확보했다. 이러한 논문과 악보는 어떤 이론에 기대어 일군 성과가 아니라, 손으로 직접 더듬고 만져가며 이룬 귀중한 성과였다. 때마침 나온 3D 프린터의 기술력도 다차원 촉각 악보를 위한 실험에 도움을 주었다. 

그녀는 그간 실패와 보완을 거듭한 여러 버전의 다차원 촉각 악보들을 직접 보여주었다. 첫 작품(다차원 촉각 악보)은 비장애 음악가들이 쓰는 악보와 가장 근접한 형태다. 플라스틱판에는 음표와 악상기호들이 빼곡하다. 눈을 감고 손끝을 대보았다. 손끝이 나아가야 할 길에는 음표와 기호가 가득 차 있어 손이 나아가지 않는다. 그녀는 “너무 정보가 많고 복잡하여 실패였다”고 한다. 이에 비해 최종 버전이라 할 수 있는 것은 종이로 되었고, 손끝이 가볍게 지나간다. 기존 점자악보의 느낌을 주면서도, 앞서 살펴본 점자악보<헌정>과 다른 그 무엇들도 살며시 느껴졌다. 

 

첫 번째 다차원 촉각 악보는 육안으로 보면 악보에 가장 가까운데, 손끝에 걸리는 게 너무 많다

그래서 다음 버전은 점액 펜을 이용해보았다. 만져보면 오돌오돌한 점자가 느껴진다. ‘점’이 주요 부분을 이루고 ‘선’적인 요소들을 추가한 것이다. 예를 들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한 호흡으로 연주하라는 것을 그 ‘선(프레이즈)’이 알려준다. 하지만 이것만으론 일반 악보(오선보) 속의 세부적인 기호들을 표기하는 데 부족했다. 

버전이 업그레이드될수록 오선보가 느껴지면서도 점자악보의 느낌이 유지된다.

그러면서도 점역사의 해설보다 일반 음표와 쉼표를 보다 쉽고 명확히 느낄 수 있도록 했다. 파우더에 열을 가해 고형화한 것이 세 번째 버전이고, 최종 버전이라 할 수 있는 것은 이를 종이로 만든 것이다. (지금 보는 악보는 쇼팽의 작품 <전주곡>인데) 높은음자리표와 낮은음자리표, 셈여림, 조표 등이 담겨 있다. 

작은 혁명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다차원 촉각 악보가 지향하는 가장 큰 목표는 비장애 음악가들과의 ‘소통’이다. 시각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그들의 악보는 각각 특유의 전문용어로 되어 있다. 그래서 합주할 때 시각장애인이 점자악보에 나와 있는 대로 “넷째길 도입니다”라고 말하면 비장애인은 이 말을 못 알아듣는다. 설명을 통해 소통을 위한 최고의 기본 단계를 만들기까지의 시간도 예상외로 오래 걸린다. 따라서 다차원 촉각 악보는 이러한 소통과 공유의 거리를 좁히는 데 유용할 것이다. 

이러한 불편함을 깨닫고, 지금 이 단계에 오기까지 오랜 시간과 나름의 힘겨움이 있었을 것 같다.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나는 여기에 관한 장·단점을 체험했고, 전 과정을 기록하고 실험한 자료를 갖고 있을 뿐이다. 그다음 단계인 상용화는 나의 역량과 능력만으론 안 된다. 보았듯이 다차원 촉각 악보 제작을 위한 특별한 기술력도 필요하고, 연구나 교육단체와의 협력도 필요하다. 또한 악보 사용법을 공유할 수 있는 장도 필요하다. 나와 뜻을 모으겠다는 이가 나타나기를, 그리고 다음 기회를 도모할 수 있는 시간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이 시간이 앞당겨질수록 시각장애 음악가들과 비장애 음악가들이 더 원활히 소통할 수 있는 날이 빨리 오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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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지
숙명여대 강사, YOUnion Ensemble 음악감독
하트시각장애인 체임버오케스트라, 덕영트리오 단원 
서울오케스트라, KBS교향악단, 신일본필하모닉, 강남심포니 등 협연

숙명여자대학교 피아노전공 학사
숙명여자대학교 음악교육 석사
미국 피바디 존스홉킨스 대학 피아노 석사
미국 위스콘신 매디슨 대학 피아노 연주 및 페다고지 박사

2015, 2018 피아노 리사이틀 
2016 스페셜K Young Artist Award 등 수상
2017 제12회 장애인 예술대상 음악부문 문화체육관광부 장관표창
2018 평창 동계 패럴림픽 개막식 연주
2018 조이 콘서트 초청독주 
2018 문화가있는날 김예지&양명진 듀오콘서트 ‘Fun’한 클래식 
2018 ‘시각화된 소리를 위한 진동’ 프로젝트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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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현민
음악평론가. 월간 [객석] 기획실장. 음악 듣고, 글 쓰고, 음악 하는 사람 만나며 책상과 객석을 오고간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공부했고, ‘한반도의 르네상스’를 주장했던 음악평론가 박용구론으로 제13회 객석예술평론상을 수상했다.
bstsong@naver.com 

영상. 박유미 미술작가
사진박영균 미술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