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9_review_1

리뷰

파릇하우스 ‘뇌병변-지체장애인을 위한 맞춤형 움직임예술교육프로젝트2 – 꽃은… 아직 흔들리고 있다’

몸의 조건과 속도를 존중하기

글. 허명진 무용평론가

 

파릇하우스의 장애인 맞춤형 예술교육 프로그램에는 ‘꽃은… 아직 흔들리고 있다’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데, 여기서 ‘꽃’은 ‘몸’으로 치환될 수 있다. 바로 ‘흔들리는 몸’이 결코 녹록지 않은 이 움직임 예술교육의 출발점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이곳을 주로 드나드는 뇌병변 및 근육병 장애를 가진 몸이며, 심지어는 제 몸 하나 가눌 수 없이 간신히 전동휠체어의 버튼 정도만 누를 수 있는 몸이다. 휠체어 바퀴를 수동으로 움직일 수 있는 몸은 그에 비하면 기동력이 있는 편이다. 

 

존재의 기반이라고 할 수 있는 몸 자체의 흔들림은 매우 예외적인 감각이자 상태이지만, 이처럼 예술적 발견과도 연결될 수 있는 영역과 예술교육이라는 실천의 영역 사이에는 간극이 발생할 수 있다. 그것은 대개 예술 개념의 확장과 움직임 자체에 대한 욕망 사이의 갈등 때문이기도 하다. 더구나 움직임 예술 혹은 춤이라는 차원은 보통 후자의 측면에 상당히 많이 치우치곤 한다. 이러한 경우 몸 자체의 흔들림이란 어쩌면 말 그대로 장애의 요소일 수 있다. 한편 전자의 측면은 몸의 흔들림으로부터 춤의 영역을 확장하며 그것을 유의미한 것으로 바라보게 할 가능성을 내포한다. 장애인의 움직임 예술 혹은 춤 교육에서 이 두 가지는 꽤 문제적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떠나서, 손가락 하나 까딱하는 정도밖에는 움직이기 어렵다는 상황은 ‘구조(structure)’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말하자면, 몸 자체의 사소한 미시적 흔들림을 적극적으로 조명해오던 일본의 연출가 토시키 오카다가 3.11 사태 이후, 오히려 재현 연극으로 선회한 것을 상기해볼 수 있다. 발을 딛고 서는 대지가 휩쓸려가고 흔들릴 때, 다시 말해 존재의 기반이 와해되는 상황에서, 오히려 픽션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내다봤다는 것이다. 결국 모든 것이 흔들릴 때 흔들리지 않는 그 무엇이 갖는 역할이 있으며, 심지어 그 자체 또한 환상이고 그것을 알고 있다 하더라도 그렇다는 얘기다.  

 

그리하여 ‘흔들리는 몸’을 포착하면서도 ‘구조’에 대해 말하는 이미경 대표강사는 다년간 장애인과 함께 이런저런 교육 프로그램을 시도해본 경험을 통해, 어떻게 그 둘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가야 하는지 터득해가고 있는 듯했다. 무엇보다도 있는 그대로의 상황을 받아들이며 거기서부터 접근해나간다는 점이 중요하다. 언뜻 처음에 ‘재활’과도 비슷해 보이는 수업 광경이 적지 않은 의문을 낳을 수 있다. 보조강사는 물론 자원봉사자까지 포함하여, 장애인 참여자 1명당 2명씩 붙어서 손발을 움직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보통의 움직임 수업과 달리, ‘웜업’의 과정에서 몸을 붙들어주고 잡아주는 게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물론 수업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도구의 사용을 통해 몸과 몸의 연결을 확대해나간다. 끈을 마주 잡은 장애-비장애인의 손은 그저 몸을 움직이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그들의 관계성에 대해 작용하는 것이기도 하다. 앞서 ‘웜업’ 과정에서의 접촉 또한 이러한 측면이 없지 않지만, 도구를 활용했을 때 연결의 감각은 더욱 선명해진다. 장애의 몸 자체에 갇히기보다 그 몸을 넘어서서 타인과 연결되기, 이러한 행위가 축적됨에 따라 몸이 개방되고 비로소 휠체어를 벗어나 무장해제된 몸이어도 괜찮을 수 있는 단계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휠체어 안에서 살아오던 몸이 바닥에 내려앉는 것 자체가 사실 그리 쉽지 않은 일이며, 타인에게 발바닥을 보이는 것 또한 매우 꺼리는 일이라고 한다. 파릇하우스가 위치한 대구 지역의 보수성의 영향을 언급하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그만큼 몸과 마음의 빗장이 굳게 닫혀있었음에 대한 반증이라고 생각된다. 

 

이곳의 교육 프로그램은 이처럼 타자에 대한 열림을 가능하게 하면서, 관계 형성을 통해 일종의 공동체로서의 작용까지 이끌어낸다. 한데 이는 거의 모든 장애인 대상의 교육 프로그램에서 파생되는 효과이기도 하다. 무엇인가를 배운다는 것 자체보다는 그 과정에서의 나눔과 공유가 그에 못지않은, 그 이상의 긍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음을 매번 절감하게 된다. 

 

앞서 언급한 ‘구조’의 역할로 다시 돌아가자면, 발레에서 사용하는 바(bar)를 휠체어를 탄 이들이 사용하는 장면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가장 구조화된 춤인 발레를 빌려오되 장애의 몸을 거기에 끼워 맞추는 방식이 아닌 그 몸에 최적화시키는 방식, 물론 비장애인의 보조를 요하긴 하지만 기존과 전혀 다른 바 사용 방식은 사실 구조의 문제를 넘어서는 일이기도 하다. 무용수의 몸에 대한 모든 환상을 빚어내는 그 도구를 장애의 몸이 사용한다는 것은 더 나아가 몸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문제 제기와도 맞닿을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바를 치우고 팔 올렸다 내리기 동작으로 넘어가자, 장애의 몸 상태와 속도에 따른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실감하게 해주었다. 순간적으로 시간이 부유하는 듯 느껴지는 그 동작은 너무도 아름다웠고, 장애인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이란 당사자의 몸과 움직이는 속도를 최우선으로 존중하는 것이어야 함을 깨닫게 했다.

 
2018 뇌병변-지체장애인을 위한 맞춤형 움직임예술교육프로젝트

뇌병변-지체장애인을 위한 맞춤형 움직임예술교육프로젝트2 – 꽃은… 아직 흔들리고 있다
한국파릇하우스, 2019.4.16.~10.6. 문화예술교육연구소 한국파릇하우스 교육장

뇌병변 및 지체장애인을 중심으로 하고 있는 움직임 프로그램이다. 지체장애 무용수들의 흔들리고 경직된 움직임과 전동 휠체어 밖에서의 움직임을 그대로 개방함으로써 자신들의 몸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과 자기 몸에 대한 예술적 아름다움을 스스로 찾아가고자 한다.

201909_review2_profile

허명진
무용전문지 [몸] 기자를 거쳐 2003년 무용예술상 평론 부문에 당선되어 평론 활동을 시작했다. 공연예술지 [판] 편집위원, 국립현대무용단 교육&리서치 연구원을 거치면서 무용의 접점을 다변화하는 작업에 관심을 기울여왔다.
choreia@hanmail.net

사진제공. 한국파릇하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