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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좌담] 장애인 예술과 예술교육

누구에게나 예술의 힘이 함께하기를

정리. 프로젝트 궁리

개요
일시
2019년 7월 16일(화) 오전 10시~12시
장소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3층 세미나실
참석자
최선영(창작그룹 비기자 대표, 좌장), 권지현(아주특별한예술마을 연출가),
이상재(하트체임버오케스트라 예술감독), 조선화(문화예술교육창작연구소 펀코 대표)
 
 
 

최선영 장애인 문화예술교육과 관련한 경험부터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저는 창작그룹 비기자 대표로 특수학교와 특수학급에서 미술을 바탕으로 놀이와 연관된 방식의 수업, 연구와 기획 활동을 하고 있다. 

권지현 아주특별한예술마을에서 매년 다양한 분야의 예술교육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프로젝트는 장애인들만을 참여 대상으로 하는 경우도 있고, 통합으로 진행되는 경우도 있다. 이와 더불어 발달장애 아이들이 편안히 볼 수 있는 공연을 만드는 일도 함께하고 있다.

이상재 나사렛대학교 관현악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하트체임버오케스트라 예술감독을 맡고 있다. 학교에서 강의하면서 자선음악회에 참여할 기회가 많아졌고, 자연스럽게 음대를 졸업한 시각장애인들과 만나는 기회도 늘어났다. 시각장애인은 지휘를 보지 못하기 때문에 일반 연주단에는 들어갈 수 없다. 같이 모여서 연주하면 시너지가 날 것 같다는 생각에 2007년 민간단체로는 세계 최초 시각장애인 오케스트라-하트체임버오케스트라를 창단했다. 또한 학교에서 다양한 유형의 장애 학생을 가르치고 있으며 2016년부터 장애인 음악가 양성 교육으로서 장애 학생들과 함께 공연을 올리고 있다. 음악을 연주하는 당사자로서,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님으로서, 단체를 이끄는 리더로서 경험하고 느꼈던 부분들을 공유하고, 다른 영역의 예술교육도 듣고 싶다.

 
 

조선화 문화예술교육창작연구소 펀코의 대표이다. 장애인 대상 미술분야 예술강사로 6년 정도 활동했다. 더 많이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같은 고민을 가진 선생님들과 모여서 펀코를 만들고, 장애를 가진 참여자와 함께 할 수 있는 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연구하고 있다. 

특수학교보다 특수학급에서, 정규 수업보다 방과후 수업으로

 

최선영 특수교육계의 자료를 통해서 매년 장애인 교육 현황을 대략 파악할 수 있다. 일반적인 방과후 수업 외에 예술교육이 조금 더 깊이 있게 진행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권지현 선생님이 특수교육을 전공하고 현장에서 활동하고 계시니 조금 더 현황을 잘 아실 것 같다. 장애인 예술교육의 현황에 대해 느끼는 점이나 문제점이 있다면 말해 달라.

 

권지현 특수학교, 특수학급에서 정규 교육과정 이외의 이루어지는 예술교육은 방과후 수업이 유일한 것 같다. 그러나 방과후 수업은 예술교육 이 외에도 다양한 수업이 있어 예술분야 수업은 많지 않다. 예술교육에 대한 요구는 많지만, 전문성을 가진 예술강사를 찾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최선영 방과후 수업은 순수예술보다는 예술치료 분야의 강사가 많고, 여전히 치료에 방점을 둔 교육이 예술교육 안에서 큰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예술치료뿐만 아니라, 예술교육을 받을 기회도 늘어나야 참여자가 다양한 예술을 접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정규 교육 안에서의 문제의식이나 고민이 있으면 말해 달라. 

 

이상재 정규 교육 안에서도 분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예술교육을 비장애인과 같이 일반화된 수준으로 받고 싶은 사람도 있고, 예술가가 되고 싶어 전문적인 예술교육을 원하는 사람도 있다. 일반적인 예술교육이라면 장애에 대한 이해가 있고, 치료적인 교육을 할 수 있는 강사가 필요하다. 전문적인 예술교육이라면 예술적 전문성이 있는 강사여야 할 것이다. 이런 면에서 복지기관이 학교보다 나을 수 있지만, 복지기관의 문제는 지속성이다. 또한 대학교 과정까지는 교육을 받을 수 있지만, 졸업 이후가 문제다. 취업도 안 되고 좀 더 높은 교육을 받기도 힘든 현실이다. 이런 부분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최선영 사회에서 장애인이 일반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는 나이나 시기가 지났을 때 단지 갈 곳을 찾다가 예술교육에 참여하게 되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평생교육으로까지 논의가 이어져야 하는 부분이 있다. 전문성이든, 치료를 목적으로 하든, 이런 것들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계속 나와야 장애인의 예술교육이 삶의 흐름과 함께 지속될 수 있다. 

 

조선화 펀코는 지역문화예술교육을 중심으로 참여자 역량별 교육 프로그램을 연구하고 있다. 더 좋은 방향을 찾기 위해 지역 내 지원사업에 참여하고 다양한 프로젝트를 시도하는 중이다. 참여자는 중증 장애를 가진 분들이 많아서 창작과 향유를 중심으로 수업하고 있다. 지역 안에서의 문화예술교육이 어떤 가치와 목표를 두어야 하는가가 가장 큰 고민이다.  

 
 

예술교육의 가치는 다르지 않다

 

최선영 현장에서 예술교육이 가진 가치에 대해서 고민이 많을 것 같다. 학교나 복지관에서는 예술교육적 기회가 부족하다 보니, 기회가 있다는 것 자체에 감사해 하며 지속되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많이 준다. 그러다 보니 교육의 질이나 내용에 대해 학교나 복지관과 밀도 높은 논의를 하기가 힘들다. 또 다른 고민은 예술교육이 교육적 서비스가 아니라 더 나아간 질문을 필요로 할 수 있는데, 현장에서 참여자가 좋아하면 수업이 잘되었다는 느낌이 든다는 점이다. 예술교육이 왜 장애인에게 필요한 것인가를 고민해봐야 하는 지점인 것 같다.

 

이상재 중증 장애가 있는 음악가가 연주하면 많은 사람이 눈물을 흘릴 정도로 감동하고 좋아한다. 이것은 비단 실력만으로 감동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예술에서는 행위자가 중요하다. 이것을 누가 하고 있고, 그만큼의 결과물을 내기 위해 얼마만큼의 노력과 고통이 있었는지 말로 하지 않아도 퍼포먼스로 보일 때 더 큰 감동을 하게 된다. 장애인 예술교육의 정부 지원과 지속성, 확대를 이야기할 때 잘하는지를 많이 물어본다. 질문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장애인 예술의 힘, 결과물을 만들기 위한 노력의 양, 향유자가 받는 감동의 크기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장애인 예술, 장애인 예술교육, 장애인 예술 공연에 대한 인식을 다르게 가지고 효과에 대한 검증 내지는 주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선영 장애인 예술교육의 가치나 필요성을 사회적인 측면에서 말씀해주신 것 같다. 한편으로 예술교육이 참여자에게 어떤 가치나 필요성이 있는지도 중요할 것 같다. 비기자의 경우에는 지적장애인이 많이 참여하기 때문에 잘하지 않아도, 가만히 있어도 참여할 수 있는 놀이를 통해 예술교육을 진행하고, 연구 중이다. 이런 것이 내가 장애인 참여자의 입장에서 생각한 예술교육의 필요성이기도 하다. 

 

권지현 현장에서 느끼기에 예술에 대한 전문성, 교육적인 목표, 치료적인 관점이 합쳐지면서 오는 혼란스러움이 있다. 이 혼란스러움을 넘어서 다시 생각하면 그만큼 예술이라는 장르가 치료의 효과도 가져오고, 놀이적인 측면에서 삶의 즐거움을 느끼게 해 주기 때문일 것이다. 장애인에게 예술이 왜 필요한가는 비장애인의 그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장애’라는 독특함이 예술분야에서는 그 예술가의 강점이 되기도 하는 것 같다. 

 

조선화 복지관 수업에서 2시간씩 1년을 만나게 되는데, 참여자들이 2시간 동안 몰입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예술을 통해 집중할 수 있는 일상의 반복적인 시간이 생긴 것이다. 중증의 지적장애를 가진 참여자들은 자신의 예술적 역량을 발견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기도 하고, 시각장애를 가진 어르신들은 예술 창작활동을 통해서 여가활동을 만들기도 한다. 수업 종료 이후에도 이 활동을 일상 생활 속에서 지속해 나가기도 한다. 이런 것들을 통해 몰입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의 중요성을 느꼈다. 예술교육 활동을 통해서, 문화적 언어를 자기만의 언어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최선영 장애인 예술교육에 대한 인식의 차이에서 오는 어려움이 있다. 담당 선생님에게 수업의 기획 의도를 설명한 후 진행하더라도 현장에서는 예술 행위가 장애를 부추긴다든지, 안전과 관련된 불안한 상황을 일으킬 수 있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이런 면에서 예술강사의 역할은 어디까지인가를 고민하게 된다. 예술강사의 입장에서 교육적 효과나 의미만 생각한다면 전체적인 것을 못 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권지현 처음 연극 수업을 시작할 때는 문화예술교육이라는 언어 자체가 생소할 때였고, ‘연극놀이’라고 하면 논다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한편 기관이나 담당 선생님이 예술교육에 거는 기대는 크고 분명했다. 치료와 교육적인 목적이 섞여 있었다. 이것을 다시 설명하는 게 꼭 필요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인식이 달라져서 기관에서는 큰 어려움은 없다. 오히려 부모님들이 기대하는 바가 크다고 느껴진다.

특수교육 전공자로서 나의 고민은 오히려 나의 수업 안에서 생긴다. 연극이 가지고 오는 교육적, 치료적 변화를 많이 보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더 교육적인, 혹은 더 치료적인 수업을 계획하고 싶은 유혹이 생긴다.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목적에 집착하게 되면 예술교육으로서의 진짜 목표를 잃어버리기가 쉬운 것 같아, 주의하게 된다. 수업의 참여자들이 좀 더 편안하고, 더 자유롭게 수업에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 활동적인 수업을 하다 보면 수업 이후에 참여자의 집중력을 흩뜨리거나, 도전적인 행동(문제행동)을 가속하게 되는 것은 아닌가? 라고 스스로의 수업을 의심하게 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예술이라는 장르가 모든 사람의 다양한 반응을 포용할 수 있는 장르가 아닌가? 우리 모두가 그렇듯이 24시간 빡빡한 생활 속에서 예술을 만나는 순간은 좀 더 풀어지고 느슨해져도 괜찮다고, 그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조선화 현장에서 힘든 점은 정답이 없다는 것이다. 내가 잡은 목표가 정답이라는 확신이 필요한데 사람들을 만나서 얘기를 듣다 보면 흔들리는 경우가 많다. 강사는 참여자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성향인지, 참여자 역시 강사가 어떤 사람인지 서로 파악하고 익숙해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런 시간이 1년은 걸린다. 그래서 지속성이 중요하다. 익숙해질 만하니까 강사가 다른 기관으로 가게 되는 경우가 많다. 또 다른 어려움은 중증의 지적 장애인 교육 프로그램을 하다 보니 언어로 소통이 힘들다. 현장 상황상 열 명을 한 그룹으로 수업을 진행하는데, 두 시간 동안 그룹별로 함께 했을 때와 일대일로 만날 때, 둘 중에 어떤 것에 의미가 있는지 고민하게 되었다. 두 시간에서 단 십 분이라도 일대일로 만나면 참여자에게는 더 좋은 것 아닌가 하는 고민을 하는데, 이에 맞춰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진행할 때 담당 선생님이나 기관에서 보기에는 다른 참여자를 방치한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정답이 없는 필요한 과정으로 본다.  이게 아니면 또 다른 걸 고민해야 하고, 이게 맞으면 하나의 방향성을 발견하게 되기에 해보자고 생각한다.

 
 

정답이 없는, 유연한 과정으로 

 

최선영 일반적인 교육에서도 교사 1인당 학생 수가 정해져 있는데 장애인 예술교육에서는 이런 게 고려되지 않는다. 아직도 제도나 인식이 부족한 지점이 많이 있다. 교육에 있어서 물리적 환경이나 규모가 중요한 것 같다.

 

이상재 성과지향적인 면이 힘들다. 참여자가 즐기면서 쉽게 할 수 있는 곡으로 수업을 할 것인지, 참여자가 힘들어하더라도 발표회를 위한 수업을 할 것인지 결정하기가 쉽지 않다. 때때로 부모님들이 선생님에게 결과물에 대해 요구하기도 한다. 그뿐만 아니라 결과물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지원이 끊어지거나 선생님이 바뀌거나 하는 상황이 생긴다. 예술교육이 지향하는 목표를 정하는 게 중요하다. 그뿐만 아니라, 장애인 예술교육에 관해 기관이나 담당 직원의 이해와 교육이 필요하다.

 

최선영 국내에는 장애인 예술교육과 관련하여 전문적인 자료나 논의할 수 있는 자리가 거의 없다. 현장의 요구는 많지만, 정보를 줄 수 있는 전문가는 극소수이고, 다른 가치가 충돌하는 논의 없이 그 전문가의 의견에 관심이 집중되는 현상은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예술강사와 참여자 가까이에서 생활하거나 실무를 하시는 분들, 양쪽이 예술교육에 대해 기대하는 바가 다르다. 예술강사들은 예술교육의 의미나 가치에 중점을 두려고 하고, 교육적 관점을 가지고 있는 실무자들은 변화나 성과, 발전을 기대한다. 현장에서는 매 순간 새로운 에피소드가 생기는 것 같다. 정답이 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더 잘하게 된다는 생각보다는 내가 더 유연해졌다고 느낀다. 

 

조선화 2년 이상 복지관에 나가니 수업의 목표나 방향에 대해 참여자와 복지사의 이해도가 높아 진행에 어려움은 없었다. 그런데 최근 새로 와서 보조해주는 공익근무요원이 수업에 대해 평가를 하더라. 그 친구의 생각에는 ‘시작과 끝’이 있어야 하는데, 그가 보기에는 내가 계획하고 생각한 ‘끝’이 적절하지 않았던가 보다. 그의 얘기를 자꾸 듣다 보니, 프로그램을 수정할 때 자연스럽게 그 친구의 의견이 반영되었다. 이후 수정된 프로그램으로 진행했더니 칭찬을 해주더라. (일동 웃음) 그의 요구가 날 힘들게 했지만, 그로 인해 공부도 하게 되었고, 보완한 수업의 방향성도 좋았고, 결과물 중심의 수업도 아니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새로운 방향을 잡아줬다고 생각한다. 수업에 대한 제삼자의 의견을 받아들일 필요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상재 하트체임버오케스트라는 1년에 9개의 특수학교에서 공연하는데, 주로 지적장애가 있는 학생을 대상으로 한다. 공연할 때 소리 지르고, 발을 구르고, 뛰어다니는 학생들이 많다. 우리는 서로가 연주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합을 맞춰야 하니 평소보다 악기 소리도 크게 내야 하고, 시끄럽게 떠들고 있으니 반응도 알 수 없어서 끝나고 나면 녹초가 될 정도로 힘들다. 그런데 담당 선생님들은 늘 아이들이 이렇게 즐거워하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고, 다시 와달라는 요청을 한다. 그럴 때마다 예술이 가진 비언어적 특성, 예술이 가지고 있는 강한 힘을 다시 한번 느낀다. 

 

권지현 복지관 담당 선생님이, 내가 부모님께 참여자들에게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오늘 수업 목표에 얼마나 도달했는지 등에 대해 브리핑해주길 원한 적이 있었다. 내 아이가 연극 수업하는 게 처음이니 궁금해하셨다. 그래서 마지막 수업을 부모님 또는 아이들의 활동 지원사분을 초대해서 함께 수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한 적이 있는데 그때 너무 좋았다. 아이들도 부모님이나 옆에 계시니 더 편안해하기도 했다. 한 번 정도는 수업을 오픈하여 부모님과 같이 활동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공연을 만들거나, 결과물 발표를 위한 수업은 부담이 많이 되고 그 과정이 힘들다. 하지만 1년의 수업을 모두 마치고 참여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면 발표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한다. 결과물에 대한 부담을 버리고 참여자들과 과정을 중심으로 결과물을 준비하면 힘들지 않고, 즐거운 준비 과정이 될 수 있는 것 같다. 

 

이상재 12월에 정기연주회를 하는데 1월 둘째 주부터 연습을 시작한다. 이렇게 1년을 준비하여 12월에 공연이 끝나면 당사자, 청중, 보호자 모두 너무 좋았다고 말한다. 힘들었다던가 우리가 이렇게까지 해야 되냐라던가 이런 불평을 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음악에서는 타이밍이 중요한데, 지휘 없이 여러 사람의 스타일과 몸에서 나오는 음악이니 맞추기가 쉽지 않다. 서로 같이한다는 게 참으로 힘든 일이지만 누구를 비난하지 않고, 감각적으로 익힐 수 있도록 과정을 재미있게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성격이 다른 사람들이 음악적으로 같아지고, 외국의 협연자들과 성공적으로 끝내고 났을 때의 기쁨, 성취감은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는 감정이다. 오로지 음악으로 하나 되고, 서로 맞춰가고 배려하면서 관심을 두고 사랑을 갖는 과정, 그 결과물에서만 느끼는 감동이 있다.

 

최선영 음악이 가지는 가능성이 있는 것 같다. 시각장애인은 지휘가 아닌 몸에 의지하기 때문에 더 감동이 크고 같이 하는 것에 대한 시너지가 큰 것 같다. 다른 장애를 가진 사람들과의 예술교육이나 창작의 경험을 논의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아직 이런 논의의 장이 충분하지 않다. 현재 정책적 지원은 교육 참여자에 대한 지원의 규모가 큰데, 바우처 사업으로 가면 논의가 끝나버린다. 이 고민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양성되고, 그 사람들이 충분한 시간을 갖고 연구할 기회가 확보되어야 한다. 그래야 장기적으로 예술교육에 대한 논의가 확장될 것이라고 본다.

 

권지현 연구, 스터디가 당연히 필요하지만, 현재 이런 기회나 지원은 매우 부족하다. 현장에서 일하는 장애인 예술교육 강사들이 다들 잘하고 있지만, 이 영역에 있어서 자신이 전문가라는 믿음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실제로 연구 과정과 그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기도 하지만 공식적으로 ‘전문가’라는 확신을 줄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한 것 같다. 내가 특수교육을 전공한 것이 현장에서 수업을 진행할 때 방해가 된다고 느낄 때가 많은데, 기관에서는 내 전공을 보고 전문성이 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예술강사들이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 옳은 방향이라는 확신을 주기 위해서 전문가임을 증명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한 것 같다.

 

조선화 청각장애인을 대상으로 수업하는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수어를 배워보고자 했는데, 강의가 개설된 지역이 한정적이었다. 보통의 교육 프로그램은 원하는 수강자가 많아야 개설되지만, 장애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교육은 수강자가 있든 없든 지역마다 상시 개설되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누구나 언제든지 배울 수 있도록 지원되었으면 좋겠다.

 
 

누구도 예술교육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최선영 장애인이 일상적으로 예술교육을 접하기 힘든 것과도 연관이 있는 것 같다. 비장애인은 사설 학원을 가거나 예술단체를 찾아갈 수도 있다. 그런데 장애인에게는 정규 교육 밖의 예술교육 기회가 너무 적다. 일상적으로 예술교육을 접할 수 있는 지원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장애인 예술교육의 역할과 방향에 대하여 한 마디씩 부탁드린다.  

 

이상재 앞으로의 장애인이 예술교육을 받을 기회, 예술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더욱 확대되어야 하고, 장애 유형과 특성에 따른 접근이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장애 예술이 갖는 가치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개선될 수 있도록 예술강사들이 더 노력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게 된다면 향유하는 사람이나 제공하는 사람 모두에게 사회적으로 큰 변화가 있을 것이다. 

 

권지현 장애인 참여자가 공교육뿐 아니라 일상 안에서 만나는 모든 예술교육에서 배제되지 않아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어떤 지원이 필요할까 생각해야 한다. 지금은 장애인 예술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하고 있지만, 나중에는 이런 단어조차 없어져야 할 것이다. 또 하나는 장애 유형별 특성에 맞추어서 개별적이고 전문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조금 더 전문적으로 예술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개인의 성향에 맞춰 교육해줄 수 있는 전문가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전문가를 양성할 수 있는 지원과 받아줄 수 있는 단체가 필요하다. 결국 어디로 가야 하는가를 길게 보고 가면 좋겠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빨리 방향성을 찾아야 할 것 같다. 

 

조선화 참여자만의 언어, 예술 언어를 발견하고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확대하는 것이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넘어선 소통의 도구,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언어 역할을 해 줄 수 있도록 양질의 문화예술교육 콘텐츠가 지속적으로 연구되어야 하고 더 많은 현장에서의 실현이 필요하다. 

 

최선영 장애인 예술교육에서 장애인 참여자가 사회적으로 ‘존재 증명’ 하기를 주변 사람들이 많이 기대하고 있는 것 같다. 그저 참여하고, 소리 내는 것조차도 충분하지 못했는데, 예술에서도 표현을 더 잘한다든지, 더 잘 참여하는 걸 보면서 그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려 하는, 그렇지 않으면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그런 면이 안타까우면서 이해되기도 한다. 예술교육에서라도 장애인의 자기 증명이 아니라 참여 자체로 의미가 발생되어야 할 것이다. 그 부분에 있어서 많은 예술강사, 기획자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정리. 프로젝트 궁리 강지영(wldudv2820@hanmail.net) 

사진. 이재범 POV스튜디오(andy45a@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