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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민희 사진작가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게, 매일매일, 뻔하지 않게

글. 김소연 연극평론가 

 

“다섯 살 때 엄마 손에 이끌려 그림을 그리던 기억이 있다. 유치원도 미술학원으로 갔는데 선생님들이 무서워했다. 엄마는 어쩔 수 없다, 독학해야겠다, 하더니 동화책을 엄청 많이 보여주셨다. 초등학교 입학하자마자 고등학생 언니들하고 데생을 했다. 그림을 잘 그렸던 건 아니다. 중학교를 기숙사가 있는 학교로 가면서 그림을 포기해야 했다. 그림을 놓아도 어쩔 수 없이 그림이 고팠다. 친구들 왕따도 있었다. 주말에 집에 가면 저 살려주세요, 했다. 주말에 화실이 문을 닫으니 일대일로 과외를 했다. 그렇게 버텼다. 고등학생이 되어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데, 집도 학교도 모두 미대 가는 걸 반대했다. 광고홍보과에 가겠다, 카피 쓰겠다, 됐죠? 그랬다. 대학에서도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은 여전히 힘들고 재미없었다. 외로웠다. 미디어 수업 과제를 해야 하는데, 다른 아이들은 팀을 만드는데 나는 같이 할 친구들이 없었다. 선생님에게 애니메이션을 하겠다고 했다. 저 아무것도 몰라요, 도와주세요, 그랬더니 선생님이 해봐, 도와줄게 하셨다. 실험애니메이션을 전공한 분이었다. 선생님이 내 과제를 외국 친구에게 보여주었더니 괴물이다, 키워봐라, 그랬다고 하더라.”

 

이민희 작가의 입문기다. 그림을 그리고 싶었고, 지금도 계속 그리고 있지만, 애니메이션 작업을 위해 찍어두었던 사진으로 데뷔했고 퍼포먼스를 발표하고 있다. 작가로 활동하고 있지만, 여전히 배우고 싶은 것도 많고 배우고 있다. 사진도 공부 중이고, 국어 공부도 하고, 명상 수업도 듣고 있다. 집요함일까? 그런데 나고 자란 평택으로 돌아가 농사를 짓고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한다. 행복하고 싶다고 하면서 ‘행복’이란 말이 적절하지 않다고 한다. 왼편에 냉증이 있다는 그녀의 작품 제목에는 ‘36.5도’가 자주 등장한다. 몸의 온도. 우리 삶을 지탱하는 항상성. 작가는 말한다. “체온이기도 하고, 365일 1년의 날 수이기도 하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게, 매일매일, 치우치지 않고, 아주 작은 것, 존재하지 않는 것을 담으면서, 행복하게, 하지만 행복마저도 넘어서서 닿고자 하는 삶과 작업.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입문기를 듣다 보니 쉽게 시작한 것은 아니지만 돌아가도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림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던 것 같은데, 지금은 사진작가로 활동하면서 퍼포먼스를 병행하고 있다. 사진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수원 에이블아트센터에서 문승현 작가님을 만났다.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작가님이 와서 보고 웃는 거다. 재밌다면서. 어, 못 그리는데? 내가 그러면, 재밌다니까! 작가님이 그랬다. 작업실에 놀러 오라고 하고 잠실창작스튜디오에 지원해보자고 했다. 포트폴리오를 만들려니 그려 놓은 그림이 별로 없었다. 애니메이션 만들려고 찍어두었던 사진이 있었는데, 사진을 가지고 와보라고 했다. 보조강사였던 사진작가님이랑 같이 사진을 골라서 포트폴리오를 만들었다. 당연히 떨어질 줄 알았다. 그런데 사진작가로 선정됐다.

그림, 애니메이션, 사진 등 시각예술로 묶이기도 하지만, 매체도 다르고 표현의 방식도 다른데, 월경(越境)을 잘 하는 것 같다. 그림과 사진을 비교한다면?

작가들한테 욕먹는다. 너 이게 뭐냐, 기초가 없다, 그런다. 이제 조금 이해하게 된 것 같다. 회화는 상상 속에서 있던 것을 캔버스에 그릴 수 있다. 내 마음을 그대로 투영할 수 있는데, 사진은 내 앞에 피사체가 있어야 한다. 그게 어려웠다. 누군가를 만나러 가야하고, 가지고 와야 하고, 앞에 놓아야 한다. 사진은 관계다. 모든 게 관계다. 사진을 하면서 나 자신과 소통해야 하는구나, 그래야 상대방하고도 소통이 되는구나 알게 된 것 같다. 내가 왕따 당한 이유를 이제야 알게 되었다. 

‘관계’라는 이야기를 들으니 여러 매체의 작업이 새로운 매체를 익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은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진실이 있다. 초점을 흐리는 작업은 우연히 얻은 이미지가 좋아서 시작했다. 내 의식을 지우는 작업이다. 이 작업을 이해하기까지 8년이 걸렸다. 선생님이 초점 흐려서 네 앞에 무언가를 봐, 보일 거야, 그랬다. 그게 무슨 말일까 했다. 내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여기 있는 이 모습이 나의 전부가 아니다. 이 너머의 이야기, 삶이 있다. 그러나 그건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보이는 것만 본다. 어떤 사정이 있는지, 어떤 상처가 있는지, 그건 보지 않는다. 그걸 다 넘어서 있는 그대로 보려고 한다. 그런데 본다는 말도 거짓말 같다는 생각도 든다. 

사진 작업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퍼포먼스도 시작했다. 그룹 퍼포먼스에서 이제는 솔로 퍼포먼스로 이어지고 있다.

뇌성마비작가회 활동을 하면서 여러 작업을 하게 되었다. 몸을 잘 써야 잘 사는 거라고 하는데, 몸은 대체 뭘까, 나를 거부한 몸은 뭘까, 그런 질문들이 있었다. 그래서 명상도 하고 그랬다. 공동작업을 하면서 많이 배운다. 관계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나도 종종 잊고 살지만, 내 동료가 선생님이더라. 동료를 통해 나 자신을 만난다. 화가 많은 나, 슬픔 많은 나, 덜렁거리는 나, 그걸 알아가고 변화하고자 하는 나를 만난다.

공동작업의 어려움은 없나?

지각해서 문제다. (웃음)

솔로 퍼포먼스 <길, 36.5도를 바라보다>에서 무대 왼편 천정에서 늘어뜨린 천과 바닥에 세워진 구조물(퍼포먼스 후반을 보면 책상을 눕혀놓은 건데)에 영상이 투사되고 퍼포먼스가 전개된다. 같은 제목의 개인전도 있는데, 영상도 본인의 작업인가. 

그렇다. 개인전 작업과는 별개로 나의 일상을 찍었다. 나의 삶, 나의 고정관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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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Violet Sound 보랏빛 사운드>, 30x40cm, Pigment Print, 2015, (우)2018 이민희 사진전 《숨; 잔잔한 흐림》, <퍼포먼스 - 흐르는 대로>

자신의 작업이 설치되어있는 무대 위에서 움직이는 것이 어땠나?

아무 생각이 없었다. 무대 위에서 살아있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무대에서 ‘살아있다’는 말을 많이 듣는데, 그게 뭘까, 사진에서 살아있는 게 뭘까, 내 삶에서 살아있다는 게 뭘까, 그런 질문을 많이 했다. 

그러고 보면 숨 쉬면서 움직이고 있는데, ‘살아있다’ ‘살아있지 않다’라고 말하는 게 뭘까 싶다.

잘 살자, 행복하게 살자. 그게 아닐까 싶다. 신명 나게 살자는 말이 있다. 그 얘기 하고도 일맥상통한다고 본다. 숨. 숨 쉬고 있는 것에 대해 많이 묻고 답한다. 숨에 대해 명상을 많이 하고 있다. 숨은 의식하고 연결되어 있다. 의식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찾고 있다.

작업을 보는데, 흐린 하늘과 연둣빛 풀잎이 선명하게 대비되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살짝 초점이 나갔다거나 혹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뿌연 이미지도 있더라. 처음 사진을 봤을 때는 초점이 흐려진 이미지들이 신비롭다는 느낌이었는데, 퍼포먼스를 보고 다시 보니 혼동의 느낌도 왔다.

혼란이다. 사진이 뭐지 이러면서 찍었다. 사진만이 아니라 나의 정체성도 혼란스럽다. 빛의 정체는 뭘까. 섬광 같은 빛을 볼 때가 있다. 눈을 떠도 감아도. 그냥 문득 반짝반짝 빛이 보인다. 많이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하더라. 어떤 선생님이 그러는데, 네 몸의 스위치가 켜지는 순간이다, 잘 하고 있는 거다, 무서워하지 마라, 그러더라. 

개인전 <길, 36.5도를 보다>(2015), <36.5도의 빛>(2016), 솔로 퍼포먼스 <길, 36.5도를 보다>(2017) 등 작품 제목에 ‘36.5’도가 자주 등장한다.

무의식적으로 썼다. 내가 왼편이 차갑다. 그래서 그 말을 가져다 쓴 것 같다. 따뜻하고 싶다는 것, 따뜻해야 행복하니까. 행복이라는 말을 쓰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런데 난 지금 어떻게 살고 있나, 난 행복한가. 그런 생각들이다.

여러 장르의 다양한 작업을 해왔다. 앞으로 도전하고 싶은 장르나 작업방식이 있나?

처음으로 돌아가고 싶다. 시나리오를 배웠는데, 마무리 못 했다. 마무리 지어서 선생님 돌아가시기 전에 나 이걸로 영화 찍었어요, 상 먹었어요, 하고 싶다. (웃음) 행복하게 살고 싶다. 은둔하는 삶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어디 가서 농사짓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 몸이 이렇지만, 장애 예술 별로 안 좋아한다. 뻔한 작업도 많다. 나도 뻔한 작업에 선 적 있다. 그러면서 지친다. 그냥 내가 뭘 하고 있는데, 어떤 사람들이 너 그거 하고 있네? 그렇게 하는 거다. 깊은 의미를 부여하고 부여잡는 것이 아니라 그냥 하는 것. 너 사진 하고 있네? 너 연극하고 있네? 어, 이게 사진인가? 어, 이게 연극인가? 나 사진 안 하는데? 나 연극 안 하는데? 아, 이게 사진이구나, 아, 이게 연극이구나. 그렇게 사는 거다. 

그냥 하고 있는 것과 행복해지는 것, 그냥 하고 있는 것과 뻔하지 않은 것이 어떻게 연관되는 건가.

‘행복’이라는 말도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내가 살아가는 공간과 시간이 있고, 옆에 사람들이 있다. 관객, 작가, 지나가는 사람들, 바람… 그냥 서 있으면 된다. 에이 재미없어, 평택으로 갈래, 그럴 수도 있다. 뻔한 건, 그냥 서 있지 못해서, 그냥 있으면 되는데. 그런데 그게 어렵고 그래서 작업이 어려운 것 같다.

 
INTERVIEW_PROFILE

이민희
사진, 현대무용 및 퍼포먼스 분야에서 활동하는 젊은 아티스트로서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역의 생명을 탐구하며 무의식중에 상처나 트라우마를 또 다른 생명력으로 ‘빛’이라는 가능성을 표현하고자 하는 실험적인 창작활동을 하는 아티스트다.
2008년 실험영화워크숍을 통해 국제실험영화제에서 LAB세션 미디어 작가로 데뷔
2011 에이블아트스튜디오 신진작가전시 《아! 뜨거워》 작가 데뷔
2015~2016년 잠실창작스튜디오 6~8기 입주작가 선정
2015 이민희 사진전 《길, 36.5도를 보다》, 사진위주 류가헌, 서울
2016 사이아트갤러리 선정 작가
2017 제 2회 국제장애인무용페스티벌 솔로부분 《길, 36.5도를 보다》, 안무 이민희, 국립극장 달오름, 서울
2018 이민희 사진전 《숨; 잔잔한 흐림》, <퍼포먼스 – 흐르는 대로>, 이민희 연출, 안무, Space 9, 서울 문래동
2018 이민희 사진전 ‘날 것의 멋’, 사이아트갤러리, 서울

 

INTERVIEW_PROFILE2

김소연  
연극평론가. [컬처뉴스] [weekly@예술경영] 편집장을 지냈다. 경기문화재단 <커뮤니티와 아트> 콜로키움을 기획하고 편집했다. 무대가 어떻게 세상과 소통할 것인가에 대한 관심으로 글을 쓰고 잡지를 만든다. 
kdoonga@naver.com

영상. 박유미 미술작가(gomako1983@hanmail.net) 
사진박영균 미술작가(infebruary14@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