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01

이슈

[좌담] 장애 예술의 미학을 찾아서

시대적 예민함을 일깨우고 접목할 수 있을까

김소연, 안경모, 오세형

개요
일시
2019년 11월 14일(목) 오후 4시~6시
장소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3층 세미나실
참석자
김소연(연극평론가), 안경모(연출가),
오세형(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사업운영팀장, 좌장) 
 
 
 

희곡집 『피해자와 악당을 넘어』 

Beyond Victims and Villains, 2006년, Theatre Communications Group 

 

1. 병신들 (Creeps, 1965년, 데이비드 프리먼)

작가가 보호 작업장에서 직접 느꼈던 분노로부터 탄생한 이야기이다. 보호 작업장이란 장애인들이 경쟁적인 외부의 압박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속도로 일할 수 있는 일터이다. 그중에서도 휴식을 위한 공간인 화장실에서 일어나는 사건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2. 발사! (Shoot, 1992년, 린 매닝)

30대 흑인 시각장애인 도니는 총을 사고 싶어 한다. 총을 산 후, 그는 어딘가를 향해 쏘고 싶어 하지만 어디를 쏴야 할지 모른다. 작가는 아이린 오펜하임 어베일러블 워크숍에서 이 작품을 창작하였다. 장애 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장애인에 대한 고정관념으로 빼곡히 들어차 있는 자신을 깨닫고, ‘젊은 흑인 남성’에 대한 미국 주류의 고정관념과 낮은 기대를 깨는 것을 미션으로 이 희곡을 집필하였다. 

 

3. P.H.*Reaks: 장애인들의 숨겨진 역사 (P.H.*Reaks: The Hidden History of People with Disabilities, 1994년, 글·각색 15명 참여한 협업 프로젝트)

1991년부터 1994년까지 협업 프로젝트를 통해 집필되었다. 총 3부로 나뉘어 있으며, 1부 ‘마술’은 프릭쇼(freak show)와 같이 구경거리로서 장애인이 소비되는 모습들, 2부 ‘종합검진’은 치유의 대상으로서의 장애인, 3부 ‘운동’은 권익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장애인의 모습을 다루고 있다. 장애가 당대의 편견과 선입견 속에서 어떤 식으로 다루어져 왔는지 보여준다.

 

4. 볼링의 역사 (History of Bowling, 1997년, 마이크 어빈)

실제 작가의 친구가 겪은 차별에 관한 이야기로부터 탄생했다. 간질을 앓는 루, 머리와 어깨 외에는 어떤 부분도 움직이지 못하는 척, 시각장애와 청각장애가 있는 코넬리우스, 소통이 불가능할 것 같은 이 세 명의 인물이 나누는 대화로 이야기는 진행된다. 

 

5. 디모인의 여름 밤 (A Summer Evening in Des Moines, 2000년대 초반, 찰스 L. 미, 주니어)  

이 작품은 인종과 장애를 주제로 삼지 않는다. 인종과 나이, 소아마비와 장애에 관해 이야기하지만, 인종과 장애가 삶을 소모하지는 않는다. 이야기 속 삶의 대부분은 사랑과 아이들, 죽음, 정치와 문학에 대한 것이다. 그저 다른 사람과 같이. 이 이야기는 놀이공원 입구의 매표소부터 댄스홀, 숲, 해변 등 계속해서 장면이 바뀌며 다양한 이야기가 전개된다.

오세형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이하 ‘장문원’)에서는 문화예술 관련 사업을 진행하면서 관련된 지식이나 정보의 수요가 많았다. 작년부터 자료를 수집하던 중, 미국의 독립연극협회 TCG(Theatre Communications Group)가 장애인 연극에 특화된 편집위원을 꾸려서 출판한 희곡집을 검토하다가 우리가 이걸 어떻게 활용하고, 장애인 연극을 어떻게 서포트할지에 대한 정보와 지식을 얻고자 번역하게 되었다. 이번 좌담은 희곡집 『피해자와 악당을 넘어』의 일곱 작품 중 번역된 다섯 작품에 대하여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미국은 1990년대 장애인 운동도 강력했기 때문에 그런 시대적인 것들이 어떻게 반영되었는지, 미학적으로는 어떻게 접근했는지 이야기해보자. 그런 다음 국내 장애인 연극의 현황과 발전방안, 어떤 방식으로 창작자나 예술가를 육성, 지원, 활성화할 수 있을지 모색해보면 좋을 것 같다. 먼저 작품별로 소회나 인상 깊었던 점을 이야기하며 시작해보자.

 

김소연 처음 희곡을 읽을 때 장애인 연극만의 독특한 극작에 관심을 가지고 읽었다. 그런데 읽다 보니 극작술 면에서는 당대 연극계의 경향이 먼저 읽혔다. 예를 들면 1965년에 집필된 <병신들>은, 직전 시기인 영국의 ‘앵그리 영 맨(Angry Young Men, 성난 젊은이들)’ 그룹의 작품들,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 같은 영국 희곡을 떠올리게 한다. 거침없는 독설이, 위악, 모든 것을 파괴할 것 같이 내뿜는 분노 등등의 정조가 그렇고, 사건의 전개라든가 잘 짜인 드라마 구조를 만들기보다는 보호 작업장이라는 폐쇄적인 공간을 설정하고 인물들이 대면하고 있는 상황을 거친 언어나 행동으로 문제적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반면 다른 작품들은 1990년대 이후에 발표된 작품들인데, <병신들>에 비해 극적 기법도 다양하고 <병신들>에서 뿜어져 나오는 분노, 절망과 달리 시선이 다양하고 정교하다. 그런 점에서 상황을 포착하는 구체성, 문제적 현실에 대한 주체적 시선 등 당사자성이 돋보이면서도 당대 연극계와의 교류나 협업도 활발했던 것 같다. 

 

안경모 작품들에서 장애 당사자성이 두드러지는 경향이 인상적이었다. 예를 들면 <병신들>은 뇌성마비를 중심으로 그들이 가진 여건을 잘 포착한 느낌이다. 화장실이라는 공간 자체가 배설, 유휴, 휴게의 공간으로 다양한 역할을 하며, 그들에게 많은 것을 밀집할 수 있는 최적의 상황을 만들어주었다. <발사!>는 저자이자 주인공이 시각 장애인이기 때문에 기존 희곡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 공간적 특성이 별다른 의미를 갖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의식의 흐름대로 서술되고 있다. 이렇게 장애인 당사자가 자신의 현실 세계에서부터 이야기를 포착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우리나라의 장애 예술을 볼 때, 장애 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비장애인적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부분이 많이 느껴졌었는데, 그런 부분들이 이 희곡들에서는 껍데기가 벗겨지고 있다는 인상이 들었다. 한편 <볼링의 역사>는 서로 다른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 일어나는 사건을 포착함으로 인해 장애인이 겪는 여러 가지 딜레마를 잘 보여주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김소연 다섯 작품의 발표 시기가 다르다 보니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차별 또는 억압이 어떤 방식으로 변화하고 그러한 변화를 어떻게 인식하고 저항했는가가 대비되는 점도 흥미로웠다. <병신들>은 보호 작업장, 특히 화장실에서 여러 일이 벌어지는데, 화장실이라는 공간의 특징, 비좁고 배설하는 공간이고 그런데 인물들에게는 그곳이 유일한 유희의 공간이고 저항의 공간이다. 그런 공간의 특징이 희곡의 거친 언어나 행동과 중첩되면서 깊은 절망과 분노를 만들어낸다. 반면 <P.H.*Reaks장애인들의 숨겨진 역사>는 중세부터 현재까지 통시적 시선으로 장애인에 대한 억압과 저항을 그려간다. <병신들>의 폐쇄적인 공간이나 절망감과 비교하면, 그만큼 장애에 대한 시선이 확장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또 이 작품에서 장면을 만드는 방식을 보면 해학도 있고 또 자기 풍자적인 시선도 있다. 장애에 대해 거리를 가지고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해내고 있다.

 

오세형 <병신들>에서는 한 공간 내에서 시간, 공간 일치를 지켜가면서 고통을 짙게 호소하는 방식이었다면, <P.H.*Reaks장애인들의 숨겨진 역사>에서는 몽타주 방식으로 장애의 역사를 훑고 있다. 이것 자체가 장애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고, 사회적 요구사항도 체계적으로 되어있는 것 같은, 그런 차이를 확연히 느꼈다. <병신들>의 경우 앞부분이 기댈 곳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면, 뒷부분에는 체계적이고 이성적이고, 풍자적이지만 그런데도 장애를 객관적으로 볼 줄 아는 시선이 생겼다고 느껴져서 놀라웠다. 

 

안경모 <병신들>에서 잉여화된 자신의 노동에 극작가의 포착지점이 있다. <P.H.*Reaks장애인들의 숨겨진 역사>는 그동안의 편견과 선입견이라는 것들이 장애를 대상으로 어떻게 역사화 되어오고 내면화되었는가에 대해 초점을 맞추고 있다. <볼링의 역사>는 기존의 잉여노동이나 선입견하고는 다르게 자신의 생존 조건 자체가 무의미하게 작용되어지는 것에 대해 집중하고 있다. 대체로 지금까지 장애를 ‘배제’라는 개념으로만 바라보며 분노적 관점을 가지는데, 이 희곡에서는 그 ‘배제’가 가지고 있는 미시적인 세계로 진입한다. 반면, 2000년대 이전 작품들은 ‘앵그리 영 맨’처럼 분노가 기본적인 모티브로 작동되고 있어 좀 더 긍정적인 모델로 승화되기에는 다소 시대적 한계가 있다고 보인다. 

 

김소연 <병신들>, <발사!>, <P.H.*Reaks장애인들의 숨겨진 역사>가 사회적 환경, 사회적 시선을 통해 장애를 탐구하고 있다면, <볼링의 역사>는 그러한 사회적 시선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사회적 시선으로 환원되지 않는 존재 자체에 대한 질문으로 나아가고 있는 점이 인상적이다. 각 인물이 겪고 있는 장애는 사회적 시선이나 사회적 억압에 의해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물론 각 인물이 처한 상황에서 그러한 억압이 제거되어 있거나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각 인물은 사회적 억압, 신체적 한계 속에서도 스스로에 대한 질문들, 관계에 대한 질문들을 더 밀고 나간다. 희곡을 읽다 보면 장애라는 주체의 조건이 결국 한계와 단절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의 문제로 다가온다.

 

안경모 흥미로운 부분은 공간적 특성이나 개인이 가지고 있는 현실과의 갈등요소들의 알레고리를 잘 잡고 있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병신들>의 경우 앞서 이야기 한 것처럼 화장실이라는 공간에 포커스를 맞추었고, <발사!>같은 경우도 시각장애인이 총을 구매해서 어디를 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어딘가를 쏘고 싶어 하는 갈증이라는 것 자체를 극작적으로 잘 포착했다. <P.H.*Reaks장애인들의 숨겨진 역사>도 중세부터 시작해서 왜 장애라는 시선이 이렇게 누적화되었는지, 권력 구조 안에서의 모습이나 개인의 형태와 같이 다층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장애인들을 거시 담론으로 묶어보려고 하는 모습들이 잘 포착된 것 같다. <볼링의 역사>에서는 간질을 앓는 사람과 신체장애로 인해서 얼굴과 어깨만 쓰는 사람, 시청각 장애인, 이렇게 세 사람이 소통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개인이 어떻게 세계 또는 상대방과 만날 것인가를 포착하는 부분이 흥미로웠다. 작가적, 편집자적 입장에서도 이렇게 다면성을 짚었기 때문에 이 한 권의 희곡집이 완성될 수 있지 않았을까 한다. 

 

김소연 <발사!>는 극작술에서도 흥미롭다. 여러 인물이 등장하고 모두 한 사건에 연루되어 있고 사건이 벌어지고 있는 같은 시공간에 있는데 그 사건을 직접 재현한다거나 재현과정으로 서로 대화한다거나 하지 않는다. 모든 대사는 일종의 진술처럼 행해지는데, 지금 누구에게 진술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호하다. 마치 시각장애인이 누굴 향해 말하고 있는지 혼란스러운 것처럼, 극의 전개가 그러한 혼란스러운 상황과 감각을 만들어낸다. 짧고 단순한 희곡임에도 그러한 극적 상황과 감각을 강렬하게 구축한다.

 

오세형 이 작품은 모순과 어이없음, 부조리를 압축해서 단막극의 묘미를 잘 살린 것 같다. 

 

김소연 <P.H.*Reaks장애인들의 숨겨진 역사>에서 프릭쇼(freak show) 장면이 나오는데, 그동안 많은 작품이 프릭쇼의 야만성 폭력성에 대해 이야기해왔다면 이 작품은 한편으로는 야만성이나 폭력성을 이야기하면서도 그러한 야만적 폭력적 장치에 놓여 있는 주체로서의 장애인의 존재도 놓치지 않는다. 무기력한 희생자로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위악적인 자기 풍자 등등으로 상황을 풍부하게 끌고 간다. 그러면서 이어지는 치료의 시대, 프릭쇼에서 장애를 구경거리로 보는 폭력은 없어졌지만 장애를 치료의 대상으로 보는 관점과 제도는 과연 폭력적이지 않은가 하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그러한 폭력적 관점과 제도를 폭력의 희생자로서만이 아니라 폭력 속에서도 세상을 살아가는 주체로서의 장애인을 그리기 때문에 가능한 것 같다. 즉 사회의 억압적 시선을 폭로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 시선을 대면하고 있는 장애인의 주체적 시선이 돋보였다.

 

오세형 미국의 사회적 흐름이 종교적 치유와 매개의 개념에서 괴물로서의 장애인 개념으로 넘어왔다가 프릭쇼로 넘어오면서 쇼잉이 된 기간이 오래되었다. 그리고 다시 의료적 모델로 돌아왔다. 우리에겐 낯설지만, 장애인들이 어떻게 사회적으로 또는 관념적으로 다뤄지는가에 대한 역사를 압축해서 풍자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안경모 <디모인의 여름밤>은 2000년대 초반 작품으로 다섯 편의 희곡 중에서 가장 늦게 나온 작품이다. 삽입 장면이 계속 들어오고 무의식구조에 따라서 이야기가 흘러가는 방식으로 여정극 또는 운문 희곡을 보는 것 같았다. 그렇다 보니 맥락을 찾거나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이 힘들었다. 기존의 희곡이랑 전혀 다른 색감, 형태로 해석의 여지가 많은, 새로운 가능성으로서 희곡집에 수록되었다고 보였다. 

 

오세형 우리나라에는 이런 희곡의 역사가 쌓여있지 않으니 장애를 본격적으로 다루거나 집단이나 개인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크지 않았던 것 같다. 미국이나 영국은 이런 역사가 쌓여있어 사회적 억압구조라던가 사회적 장벽까지 도발적으로 연결하는 작품들이 많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외에 우리나라의 장애 예술과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안경모 국내의 장애인 연극계를 보면 장애를 일반화시키는 경향과 장애로 인한 삶을 낭만화시키려는 경향, 이 두 가지가 많이 보인다. 이 희곡집에서는 거침없이 자신의 장애와 정면으로 맞닥뜨리고 있어서 적극적으로 커밍아웃하고 있구나 하는 인상이 많이 와 닿았다. 국내의 장애인 연극계는 스펙트럼은 넓어졌지만, 우리가 온전히 넘어가야 할 커밍아웃의 시점을 지워버리고 넘어간 것이 아닌가 싶다. 온전하게 장애를 만나고 그 장애 안에서 겪게 되는 가장 깊은 고민과 존재론적인 질문들을 거쳐야지 장애인 연극, 장애를 다루는 많은 예술이 한 단계 더 자기 동력으로 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김소연 한국사회의 다른 분야도 그렇듯이 장애인 예술 활동, 장애인 연극도 여러 과정이 동시에 전개되고 있는 것 같다. 문제의식이 진전되지 않았다기보다는 어찌 보면 동시에 폭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래서 앞으로 전개될 상황을 예비하는 것이 필요한 것 같다. 무엇보다 장애인 예술 활동에서 협업이 더 확대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지금까지 꾸준히 성장해온 단체들을 보면 장애인 인권운동과 연계되어 있다. 장애여성공감 춤추는 허리는 장애여성인권운동과 예술 활동을 병행한다. 장애문화예술극회 휠도 장애인 운동단체를 모태로 시작되었다. 극단 애인이나 극단 다빈나오 등은 두 단체보다 늦게 출발하고 좀 더 공연활동에 집중하고 있는데, 극단 애인은 작가 연출가들과 협업이 활발하다. 0set프로젝트는 장애·비장애 예술가, 활동가의 협업 프로젝트를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다양한 방식의 협업 프로젝트가 더 꾸준히 폭넓게 이루어지는 게  필요한 때인 것 같다.

 

안경모 우리 장애인 연극계에 있어서 아쉬운 부분은 내면적인 고민이 가지고 있는 집중점과 그것에 대한 현상성 자체가 온전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자기 자신의 내면과 직면하면서 겪게 되는 질문들로 온전히 맞닥뜨려져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부분에서는 희곡집이 우리에게 던져줄 수 있는 메시지가 많을 것 같다.

 

오세형 아까도 잘 짚어주셨지만, 이 희곡 작품들은 장애 간의 다면성이 충돌하는 부분들이 매력 있다. 장애 간의 오해, 차별, 서로 간의 폭력의 지점까지 도달해있고, 그걸 통해서 장애라는 문제를 현실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반면 우리나라는 제도적으로나 정책적으로 하나로 묶여있다. 다면적 주체이고 각각의 스토리텔링이 있겠지만, 발견하기에는 쉽지 않은 현실이다. 앞으로 문화예술적으로 논의를 통해서 흡수하면서 예술로 표현하기 전 축적할 수 있는 계기나 시간을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안경모 이 희곡들을 보면 개인성이 가지고 있는 실질적 고민이나 갈등, 역경을 보면서 그 사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과정이 있어서 인물 한 사람 한 사람이 기억에 남는다. 그것이 중요한 지점이라고 생각하는데 우리나라는 개인이 집단 속에서 한 무리가 되어 그 개별성이 보이지 않는다. 이런 것들을 해결할 수 있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김소연 창작자의 문제가 아닌 예술계나 사회 전반적으로 연결된 문제가 아닐까 싶다. 개개인의 목소리에 집중하고 귀 기울여 듣고 지켜봐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던 거다. 희곡집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협업, 극작 수업, 토론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는 것 같다. 뛰어난 사람이 나타나서가 아니라 다양한 방법의 협업이나 프로그램이 운영되면서 아티스트, 활동, 작품이 발견되는 거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장애인 연극만의 독특한 형식이라거나 극작술보다는 당대 연극계의 경향이나 성과가 이야기에 적절히 흡수되어 있는 점이 돋보인다. 즉 형식적 새로움으로 휘발되지 않는 당사자성, 동시대 연극의 경향을 흡수하면서 자신의 단단하게 직조하는 힘이 강렬하다. 

 

오세형 국내 상황과 비교하다 보니 작품에 대해서 더 깊이 있는 논의가 나온 것 같다. 현재 현장에서 메타적으로 생각했던 부분이라든지 앞으로 시도해야 할 부분이 뭐가 있을지 궁금하다.

 

안경모 이 희곡집이 탄생하기 위해서 극작 워크숍이 많이 진행되었고, 그것이 주는 힘이 매우 컸던 것 같다. 다른 감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에 이런 희곡이 나온 것이고, 온전하게 장애 당사자성에 의해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그러면 우리가 겪는 이야기로 관객과 만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김소연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다양한 협업시스템이 중요한 것 같다. 희곡마다 어떤 과정을 거쳐 창작되었는지, 어떤 프로그램이었는지, 협업 과정은 어땠는지, 제작과정은 어땠는지 세세하게 적어두고 있는데, 극작 프로그램이라든가 제작극장과의 협업 등 협업 방식이나 시스템이 매우 다양했다. 장문원이 문제의식을 가지고 기획력을 발휘해서 제작역량이 있는 기관과 다양한 방식의 협업을 시도해보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오세형 우리의 이야기를 지금에 맞는 형식으로 촉진해내면서 예술적 의미나 문화적 가치가 있는 형태로 빚어지려면 뭔가 더 연결되어야 한다고 생각이 든다. 

 

안경모 자신을 커밍아웃하는 단계부터 시작해서 나의 발언 또는 행위가 하나의 예술로서 환원될 수 있다는 걸 느끼는 순간부터 달라질 수 있을 것 같다.

 

오세형 이 희곡집은 시대적 본질의 사태 속으로 들어간 작품을 고르려 한 것 같다. 결국에는 우리 시대에 맞는 논의와 관점을 드러내는 것이 당대의 예술적 현실을 만들어내는 힘인데, 주체성이 만들어지는 이런 장이 있어야 장애 예술 활성화의 에너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안경모 답습이 아니라 자기와 직면하는 작업을 통해서 생각이 바뀔 수 있다. 이 희곡집과 같은 것들이 깊이 있는 성찰을 이끌어 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오세형 장애인 예술가 당사자들도 그런 장을 많이 원하고 있을 것 같은데. 시대적 예술양상은 계속 변하고, 어떻게 하면 시대적 예민함을 일깨우고 접목될 수 있을까 하는 어려운 고민을 하게 되는 자리가 된 것 같다.

 

안경모 우리나라에 많은 장애인 예술가들뿐 아니라, 그 저변에 시민으로서의 장애인들이 자신의 예술 활동에 접근해보기 위한 초기 단계를 위해서 아카이빙 작업이 필요하다. 한국 작가들로 만들어져있는 장애 당사자성을 전제로 한 작품들, 해외의 작품들, 이런 것들이 쌓여 저변을 확장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 같다.

 

김소연 축적된 이야기를 다양하게 접할 수 있게 해주는 것 필요하다. 지원사업이나 멘토링이 아닌 꾸준히 자신을 돌아보고 생각할 수 있는 과정이 필요할 것 같다. 각자 내면을 들여다보고 혼자서 만들어낼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오세형 자생적으로 생겨난 장애 연극계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함께 초반 단계에 있는 작가에 대한 훈련도 고민해보라는 말씀인 것 같다. 저변 확대도 향후 중요한 부분인 것 같다. 장애 예술 창작을 넘어서 문화예술 향수와 같은 부분은 장문원에서 지속적해서 고민해보겠다. 우리나라 장애 예술 창작의 지평을 넓히는 데 많은 도움이 된 자리였다. 앞으로도 이런 논의의 장을 계속해서 만들어나가겠다.

정리. 프로젝트 궁리 강지영(wldudv2820@hanmail.net) 

사진. 박영균 미술작가(infebruary14@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