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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2019 포용적 예술 작가 육성 워크숍 ‘언러닝, 뮤지엄’

매력적이었던 검고 부드러웠던 우리들의 몸짓

글. 윤주희 미술작가

 

프롤로그

착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어요.

좋은 사람이 되는 것도 나쁘진 않죠. 

하지만 이젠 매력적이고 싶어요.

 

오래전부터 생각해오던 이 말을, 종량제봉투를 매개로 도시의 민낯을 리서치했던 2011년 <폐기될 하얀 오브제> 프로젝트를 통해 ‘사람’에서 ‘봉투’로 변경해 사용했다. 물론 ‘예술’로도 변경 가능하다. 나의 작업이나 예술활동이 착한 적은 없었기에…, 어떻게 보면 그런 이유로 ‘장애’라는 키워드가 은유적이라도 내 작업에서 드러나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간 ‘장애’라는 주제가 예술 속에서 보일 때 불편했던 것을 기억해보면, 감동이 전부인 착한 예술, 비장애인으로서 지금의 현실에 만족하자는 계몽적 입장, 그리고 가장 문제시됐던 것은 그들이 이슈메이커로 이용되고 있다고 느낄 때였다. 이런 이유로 그들에게 내가 할 일은 약자를 향한 배려뿐이라는 전근대적인 사고에 멈춰있었다.

 
 

미술관 속에서 진행한 포용적 예술

장애 예술가들과는 작품이 아닌 사람으로 먼저 만났다. 자기소개 직후 우리는 어깨를 부딪칠 만큼 작은 원을 만들어 서로의 동작을 따라 하며 서로의 언어를 시도하고 소통했다. 미술관 로비라는 공개적 공간에서 처음 나만큼 당황하며 불안해하던 그들이 펜을 잡으면서 안정을 되찾는 것을 보며, 그리고 한 치의 머뭇거림이 없는 그들의 자유로운 선을 보고, 그들의 삶에 예술이 얼마나 깊이 자리 잡고 있는지 깨달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그들과 짝을 이뤄 서울시립미술관 전시 관람을 했던 상황이었다. 우리가 들어섰을 때 드러나지 않지만, 서서히 우리 쪽으로 다가오는 상기된 지킴이들의 행동이 시간이 지나면서 느슨해졌다. 워크숍 장소가 굳이 돌발 상황이 발생하기 쉬운 미술관 로비인지 그때서야 이해됐다. 장애 예술가들이 그런 환경을 포용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비장애인들이 그들과 같이하는 상황이 일상이 되도록 디자인된 워크숍이었다.

 
 

누구든지 예술가가 될 수 있다?

엘리스 폭스의 포용적 예술을 대표하는 슬로건이다. 하지만 ‘누구나 예술을 할 수 있다’로 바꾸고 싶다. 예술가가 한다고 모두 예술작품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예술은 누구나 할 수 있고 또 어떤 형식이든 될 수 있다. 이런 상황이 예술계는 물론 사회 전반에 퍼져있어야 한다. 물론 꾸준히 작품 활동함에도 불구하고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못한 학습장애인들이 사회적으로 ‘예술가’로서 인정받고자 하는 것은, 이들 조건이 공공예술지원 등에서 제외되어왔기 때문이다. 다양한 예술인들의 여러 상황을 배려한 다변화된 지원 조건 또한 마련되어야 한다. 그래야 다양한 조건, 상황에 놓인 이들이 함께 모일 수 있는 표현의 무한지대 예술판이 될 것이다. 이번 ‘언러닝, 뮤지엄’ 워크숍은 놀이와 예술, 장애와 비장애, 제도권과 비제도권 등의 경계를 가뿐히 무너뜨렸다. 강사인 앨리스 폭스가 비장애 작가 대상으로 진행한 ‘포용적 예술 교육 워크숍’에서 중요하게 언급한 랑시에르의 글은 그런 의미에서 적절하다. 

 

“완벽한 포용적 프로젝트는 없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그러나 한 가지 목표는 예술활동을 통해 소외를 최소화하고 평등의 수준을 찾는 것입니다.”

 
 

미묘한 통역의 간극 – 학습장애인들의 사운드와 말 사이

학습장애가 있는 예술가들은 말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사운드일 경우가 종종 있다. 물론 그 사운드조차 중간중간 갑자기 튀어나오는 의미심장한 단어들로 우발적 맥락을 통해 화자의 심리를 파악하게 한다. 그것을 놓치면 피상적으로 그들이 우스꽝스럽게 보이기 쉽다. (영화 <말아톤> 주인공이 반복적으로 상품 광고 멘트를 따라하는 대사에 관객들이 웃었던 상황과 비슷하다.) 이런 과정은 통역으로 전달되기 힘들다. 워크숍을 이끌었던 앨리스 폭스가 간혹 답답해했던 부분도 그런 지점들이었다. 그녀는 장애인들과 함께 그들의 언어를 사운드 작업하기를 원했지만, 목적과 의도를 정하고 진행하는 편집 형태로 그들의 목소리가 새롭게 정의될 것이 고민이었다. 이 염려는 참여 작가들과 논의됐고, 앨리스 폭스도 그 상황에 대해 이해하며 진행된 사운드 작업은 최종적으로 보류됐다. 동일 언어권의 학습장애 예술가들과 포용적 예술이 이루어져야겠다는 생각도 함께하게 되었다. 

 
 

In-Out: 누구나 함께 할 수 있는 자리

모두가 잡아야지만 들 수 있는 커다란 검정원형의 천을 들었다 놓기를 반복한다. 미술관 로비를 다 덮을 만큼의 검은 원은 부드러운 곡선과 광택을 통해 어수선하던 공간을 압도한다. 그 원 안에 또 여러 개의 원들 속에 한 명 씩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한다. 누가 봐도 약속되어있지 않은 동작으로 서로 부딪치기도 하고, 한 원에 두 명이 들어가기도 하고, 어떤 이는 여러 원을 돌아다니며 밖으로 나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날 우리 퍼포먼스 모습이다.     

 

포용적 예술이 우리의 퍼포먼스처럼 모든 사람이 부담 없이 들어왔다 나갈 수 있는 예술이었으면 한다. 예술에서 장애를 이야기할 때 거대한 담론이나 사회적 충돌이 아직 불가피한 부분도 있겠지만, 포용적 예술 안에서는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상황이면 한다. 이런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장애·비장애 예술가들이 더 많이 관객을 만나고 서로의 입장과 의견을 쿨하게 드러낼 수 있는 환경이 우선이 되어야겠지만 말이다.

 
 

에필로그

2019년 포용적 예술 워크숍이 끝난 이후 한 번 더 이 말을 꺼내 보려고 한다.

 

착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어요.

좋은 예술이 되는 것도 나쁘진 않죠.

하지만 이젠 매력적이고 싶어요.

 

매력적이었던 검고 부드러웠던 우리들의 몸짓을 기억하며.

 
언러닝_포스터

2019 포용적 예술 작가 육성 워크숍 ‘언러닝, 뮤지엄’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 서울시립미술관 공동주최, 2019.10.1.~10.18., 이음센터·서울시립미술관  

장애 및 비장애 예술가 간 공동창작 등 포용적 예술활동을 장려하고 미술관 내 장애 예술가·장애인 관련 프로그램 개발을 위한 교육 워크숍과 공동창작 워크숍이 진행되었다. 영국 포용적 예술 분야 전문가 앨리스 폭스가 강사로 참여했고, 비장애 시각예술작가와 서울시립미술관 교육사업 담당자를 대상으로 ‘포용적 예술 교육 워크숍’ 4회, 장애·비장애 시각예술작가가 함께하는 ‘포용적 예술 공동창작 워크숍’ 4회가 진행되었다. 워크숍 결과를 공유하는 전시와 파이널 퍼포먼스 <언러닝, 뮤지엄>이 10월 18일 서울시립미술관 로비에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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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주희 
경원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하고 더치 아트 인스티튜트에서 순수미술을 전공했다. 창작과 기획을 겸하고 있으며, 또한 아티스트 그룹 컨템포로컬 멤버로도 활동하고 있다. 세상의 모든 존재들이 가지고 있는 여러 형태의 의지에 대해 작업하고 있다. 
juheeyou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