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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노 스트링스 어태치드 장애 극단 <그게 뭐였지>

거울에 비친 얼룩, 얼룩을 통과한 얼룩

글. 김남수 안무비평가

 

호주에서 날아온 배우들이 무대에 서서 말들을 구호처럼 던진다. 관객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안 보는 것 같기도 하다. 구호처럼 던져진 말들은 배우 자신의 삶에서 나온 마디인지 누가 써준 연극 대사인지 처음에는 알 수 없다. 뭔가 유약해 보이고, 어딘지 불안해 보이는 배우들의 면면 속에서 갑자기 다음과 같은 문장이 터져 나온다. 

 

“잊어버렸단 걸 기억하지 못했다면, 잊어버릴 수 없겠지. 안 그래?” 

 

잊는다는 것은 인간에게 자연스런 현상이다. 그러나 기억하고 있던 것을 망각하는 것은 흔적을 남긴다. 그 흔적의 희미한 느낌 때문에 기억과 망각은 하나의 작은 갭을 통해 연결되어 있다. 망각된 것은 다시 기억으로 회복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호주 애들레이드에서 날아온 배우들은 스스로를 그럴 가능성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시인하는 것이다. 망각의 경험을 박탈당한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그리고 그러한 장애를 연극에서 말하는 “지금 여기의 사람들이 느끼는 삶은 무엇이고, 그 삶의 본질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비춰볼 수 있다면 무엇 때문인가.

 

“‘의식’은 우리를 인간답게 만들어줘요. 그리고 우릴 구별해주죠.”

 

기억의 장애가 있어 그 여파로 신체적인 징후가 있지만, 그 징후는 아이러니하게도 삶을 삶답게 살아가려는 작은 디딤돌 같은 것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 징후는 인간 의식에 비추면, 계속 생각하면서 시간을 멈추는 행위를 유발하기 때문이다. 가령, 이런 비유를 들면 어떨까. 장하석의 『온도계의 철학』 말미에 나오는 에피소드. “안경에 얼룩이 있다. 그 얼룩을 보려고 하면, 눈이 나빠서 보이지 않는다. 할 수 없이 안경을 끼고 거울 속에서 안경에 맺힌 얼룩을 봐야 한다. 그러나 그 얼룩은 매우 크기 때문에 이미 얼룩을 통과한 시선으로 얼룩을 보는 꼴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정말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얼룩을 통과하면서 어딘가 어두워진 가운데 보이는 얼룩의 형상은 헤아리고 가늠해야 하는 게 아닐까. 어떤 다른 영역에서.

 

다큐멘터리 연극 <그게 뭐였지>(I Forgot to Remember to Forget)는 바로 이러한 얼룩 있는 안경으로 거울 속의 얼룩을 보는 것처럼 굉장히 심오한 질문을 던진다. 즉 망각으로 인해 본래 있었던 현실이 공백으로 변해 “그것이 있었다“는 사실관계가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그 공백을 통해서 본래 있어야 할 현실을 헤아리고 가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이것이 이 연극에 많은 배우들이 나와서 각자 자기 이야기를 하면서 서로의 이야기들과 교차하는 이유이기도 할 텐데, 망각의 침투에 의해 무엇인가 배드섹터(bad sector)가 발생한 상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이야기 속에는 자신의 공백으로 남은 현실의 부분이나 편린이 깃들어 있다는 것이다. 메를로-퐁티는 3차원 사물의 뒷면은 보이지 않지만, 그 너머의 다른 사물이나 배경에 ”비친다“라는 신비스런 표현을 썼다. 타인이나 다른 사물에 나의 그림자가 비치듯이.

 

기억이 인간의 품위를 지켜준다는 근대적 통념에 짓눌리지 않고, 이 장애인 배우들은 ‘의식’이 인간다움을 버팀목처럼 지켜준다고 담담히 표현한다. 무엇인가 맥락 없고, 무엇인가 서로 연관되지 않는 이야기들이 망각이라는 현상에 의해 진행된다고 해도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의식’은 얼룩 있는 안경처럼 거울 속의 잘 보이지 않는 얼룩을 살피는 시선으로 이미 망각되어 사라진 기억이자 현실을 헤아리고 가늠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아니, 헤아리고 가늠하지 못한다손 치더라도 그 공백을 사유하고 고뇌하며 보다 치열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이다. 처음에 등장한 배우들에게서 다소 부자연스러운 연극 연기처럼 보였던 것이 사실은 그 무대에 두 발로 서 있는 현존 자체였고, 그들의 불안정한 대사 연기처럼 보였던 것이 사실은 현실에서 살아가는 그들의 목소리 자체였던 것임을 후폭풍 휘몰아치듯 벼락처럼 깨닫는다.

 

장애인 배우들이 무대에 나와서 펼치는 <그게 뭐였지> 공연은 관람하는 동안 이상한 기분에 휩싸이게 한다. (망각의 전염처럼 같은 문장을 반복해본다) 그 기분은 어떤 식으로든 체험이 불가능한 것에 대해 헤아리고 가늠하려고 하는 노력이 남의 일이 아니라는 데서 오는 것 같다. 왜냐하면 이 배우들이 겪고 있는 현실의 일을 비장애인들은 겪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헤아리고 가늠하려는 행위, 확장된 관람 행위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를 건드린다. 즉 겪지 않았는데, 그리고 겪을 수도 없는데, 신체와 말의 행위 속에서 이미 겹쳐지는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호주 애들레이드에 있는 노 스트링스 어태치드 장애 극단(No Strings Attached Theatre of Disability)의 이 공연 시도는 단순히 장애인 배우들이 강한 현실적 백그라운드를 품고 다큐멘터리 연극을 한다는, 혹은 웰메이드 재현 연극의 정반대로 나아간 실험적인 연극을 한다는 차원이 아니다. 본래 예술이 “한번도 체험하지 않은 체험을 하는 것” 나아가 “(미지의) 체험을 사랑하게 되는 체험을 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면, 바로 그러한 정의에 부합하는 공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체험과 비장애인의 체험은 마치 아래의 예처럼 나란하며, 그렇게 같이 또한 다르게 간다. 이것이 <그게 뭐였지>가 주는 장애 감각이 주는 인식론적 충격의 여파이기도 하다.

 

“오른쪽 손은 뜨거운 물에, 왼쪽 손은 차가운 물에 넣습니다. 그리고 5분 뒤 양쪽 손을 미지근한 물에 담급니다. 이때 왼손과 오른손은 똑같은 물의 온도를 다르게 인식합니다.”(장하석 과학철학자, 케임브리지대학교 석좌교수)

 
포스터

그게 뭐였지(I Forgot to Remember to Forget) 
노 스트링스 어태치드 장애 극단(No Strings Attached Theatre of Disability), 2019.12.11.~12.14. 아음아트홀

배우들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공동 창작된 작품이다. 우리가 살아가며 겪는 변화에 대한 수용과 망각, 모든 것을 초기화하고 다시 학습하는 과정, 그 과정에서 발견하는 가치를 통해 모두가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간다는 현실을 다시 한 번 보여준다. 2018년 싱가폴 트루컬러페스티벌에서 쇼케이스를 선보인 뒤, 2019년 7월 호주 애들레이드에서 초연하여 호평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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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수
무용평론가. 미술기획자. 백남준아트센터, 국립극단,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에서 일했고, 제10회 서울미디어시티 비엔날레 콜렉티브 감독으로 활동했다. ‘확장된 안무’ 개념을 바탕으로 공연, 미술, 다원 등을 연결 짓고 있다.
kiapenu@gmail.com
(프로필 사진 ⓒ 양동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