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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문승현 작가‧기획자‧시인

막힘없이 흐르는 ‘작지만 묵직한’ 발언

글. 류동현 미술 저널리스트

 

 

사랑만큼 깊은 하늘이었다
깨질듯한 그리움이 휘몰아치고 / 등을 떠미는 바위들이 울부짖는
온몸으로 하늘을 느끼며 / 추락하고 싶었다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오르는 / 물길에 네가 있어
하늘은 그렇게 깨져 버렸나 보다

– 문승현 <미시령>, 『고해소 앞에는 등불이 켜져있다』 중에서

줄기차게 내리던 빗줄기가 잠시 쉬어간 8월 하순, 문승현 작가의 작업실을 찾았다. 화가이자 기획자, 퍼포머, 작곡가, 그리고 시인으로도 활동 중인 문승현 작가의 작업실은 강북구 번동에 자리 잡고 있었다. 어렸을 때 살던 동네 근처라 반가웠다. 아파트 상가의 2층에 있는 작은 작업실 한켠에는 작가가 지금까지 작업한 작품들이 정리되어 있었고, 벽 한 면을 채운 책장에는 작가가 읽어온 책들이 빼곡히 꽂혀있었다. 작업실 가운데에 놓인 커다란 책상 위에는 한창 진행하고 있는 작업들과 컴퓨터 등이 어지러이 널려있었다.

 

작업실에서 구력이 느껴지는 듯하다. (웃음) 자신에 대한 소개를 부탁한다.

지금 사용하는 작업실은 2013년부터 사용했다. 그 전인 2011년부터 2012년까지 서울문화재단 잠실창작스튜디오에 입주해서 활동했고, 2017년과 2019년에 다시 잠실창작스튜디오에 입주해서 입주작가로 활동했다. 지금까지 작업했던 회화 작품들, 그 외에 장식용 책들이 쌓여서 그런 느낌을 주는 듯하다. (웃음) 20여 년 전 대학교를 졸업하고 회화작가로 입문했다. 어렸을 때 선생님과 부모님이 내가 화가가 되는데 큰 원동력이 되어 주셨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미술 시간에 얼굴을 그렸는데, 매우 잘 그렸던 듯하다. (웃음) 선생님은 부모님에게 내가 화가가 되어야만 한다고 강하게 얘기를 해주셨고, 부모님 또한 이를 지지해 주셨다. 나도 그 이후부터 화가의 꿈을 키웠다. 종이와 펜만 있으면 그림을 그렸을 정도로.

회화 작업 외에 전시 기획, 공연연출, 작곡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작업으로 확장하게 된 계기가 있는가?

사실 처음부터 다양한 활동을 의도한 것은 아니다. 이른바 생계형 예술가로서 ‘닥치는 대로 일을 맡아서’ 하다가 보니까 결과적으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었다. (웃음) 툭툭 던진 기획안이나 아이디어들을 구체화하다 보니, 그림 작업 외에도 기획, 공연연출, 작곡 등 다양한 결과가 나왔다. 개인적으로, 혹은 의뢰를 받아서 다양한 공모사업에 지원하면서 기획안을 쓰게 되었는데, 이들 기획안이 선정되면서 자연스럽게 행사에 대한 기획과 전반적인 연출을 맡아서 하게 되었다. 이렇게 기획과 행사를 만들다 보니까, 나의 메시지를 밝힐 수 있는 자리도 생기고, 관련해서 일도 생기는 선순환이 이루어졌다.

작업의 영감은 어디에서 얻는가?

경험에서 나온다. 기록을 잘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세계를 경험하고 바라보면서, 즉흥적으로 작업에 대한 영감을 떠올린다. 사실 요즘은 영감이란 말을 잘 쓰지는 않는다. 예술이라는 말도. 개인적인 작업을 할 때는 어느 정도 느낌에 의존하는 면도 있지만, 그것 역시 나의 메시지에 부합하는 것이어야 한다. 나는 경험하고 소통하는 중에 아이디어와 이미지를 떠올린다.

작가님이 대표로 있는 옐로우닷컴퍼니에 대한 소개를 부탁한다.

일반적으로 이익을 추구하는 회사는 아니다. 사람들이 프로젝트에 따라 모이고 헤어지면서 구성된 임의단체다. 올해 열었던 프로젝트 《흐르는 벽으로 대화하기》를 옐로우닷컴퍼니가 주도해서 주최했다.

올해 7월 열린 《흐르는 벽으로 대화하기》에 대해 소개해 달라.

간략하게 설명하면, 장애를 만드는 구조에 대한 이야기다. 장애를 만드는 물질적 구조가 있으며 그 구조의 하나인 건축과 도시, 그것을 만드는 벽을 주제로 각각 다른 분야의 작가들이 모여 생각을 공유하고 각자의 방식으로 해석해 작품을 발표하는 형식의 작업이었다. 이른바 ‘옴니버스’ 작업이라고 할까. 다소 생소한 협업 방식과 사변적인 구조 때문에 작업 과정이 쉽지 않았지만, 장애와 건축에 대한 또 다른 발언으로 기록되었으면 한다. 가끔 ‘흐르는 벽’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가지고 있는 지도나 내비게이션을 보라. 도시의 길은 건축물 사이로 흐르고 있다. 건축물을 구성하는 것은 무엇인가. 드러나는 것은 벽이다. 길은 벽과 벽 사이를 흐르고 있다. 말을 붙여보자. 길이 흐르는 벽, 강이 흐르는 벽, 사람들의 말소리가 흐르는 벽이다. 이것 말고도 해석은 얼마든지 다양해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공간을 한정 짓는 벽이 아니라 무한히 확장하는 벽을 상상한다는 취지였다.

이 전시는 지난해에 기획했던 《장애와 도시와 건축의 상상여행》 프로젝트의 후속 기획으로 알고 있다.

《흐르는 벽으로 대화하기》도 《장애와 도시와 건축의 상상여행》도 도시와 건축에 대한 발언이었다. 내 작업을 발언이라고 소개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을 수도, 반대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두 프로젝트의 성격은 발언에 가까우므로 발언이라고 표현하겠다. 나의 작업은 단순한 동기에서 시작된다. 내가 속한 사회, 단체에서 그 구성원들과 소통하면서 그들의 필요와 욕구, 개인적·사회적 문제와 그것들의 구조적 모순을 관찰하고 해결책을 찾는 과정에 나의 작업이 어떻게 개입할 수 있는지 묻는 것이다. 물론 항상 답이 있는 것은 아니며 작업이 그 답을 제시하기를 바랄 수도 없다. 그러나 그들의 욕구가 예술을 통해, 또는 예술로 발현될 수 있다면 나의 작업도 예술의 한 부분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장애와 도시와 건축의 상상여행》도 그 동기는 아주 단순했다. 여행이라는 여가 생활이 어려운 장애 예술인들에게 그저 어디론가 떠난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가 묻고 싶었다. 그리고 그들이 ‘여행의 자유’라는 헌법상, 인권법상의 기본권을 제한받는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했다. 결국, 물질적 환경적 구조 때문이라고 생각되었다. 더 나아가 그것은 예술이면서도 예술로 인정받지 못하는 예술의 한 분야인 건축과 도시가 만드는 구조적 환경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 결과 도시와 건축의 주체로서 발언하려 했다. 그저 흉물스러운 편의 시설로서 설치된 장애인 시설이 아닌 미학을 담아낸 보편적인 건축물이 세워져야 한다고 말이다. 《흐르는 벽으로 대화하기》는 그보다 좀 더 사변적이었다. 서사적인 구조나 스토리텔링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인식 구조에 대한 장황한 설명 때문에 쉽게 접근하기 어려웠던 측면도 있다.

작가에게 미술이란, 예술이란 무엇인가?

어려운 문제다. 아마 모든 작가에게 이 문제는 어려울 것이다. 미술은 내 삶의 여러 가지 중 일부분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나는 요즈음 미술, 예술, 철학, 미학 이런 말들을 잘 쓰지 않는다. 말 자체가 가지는 무게감이나 권위적인 느낌이 그렇고, 이런 용어들 자체의 기원이 일본식 한자번역어라는 점에서 일제강점기의 잔재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용어의 문제를 차치하고 본다면 나에게 작업이란 생계이기도 하고 탈출구이기도 하며 통로이기도 하다. 나는 작업을 해야 먹고 산다. 작업할 때는 다른 일에서 놓여난다. 작업으로 소통한다. 나는 예술이 나에게 속해 있다고 보지 않는다. 그것은 나에게서 놓여나 얼마든지 다른 것이 될 수 있다.

작업을 통해 작가로서 지향하는 예술적 목표가 있다면? 예술 철학도 함께 설명해 달라.

모든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나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나와 다른 생각들을 천천히 서로 인정하고 조금씩 세상이 바뀌는 것을 목표로 한다. 여러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내 작업의 방향성을 생각해 보면, 회화 작업은 《서정》이라든지 《마음, 하늘을 바라보다》 등의 전시에서 보여준 것처럼 내면의 감성이나 감정을 표현한다. 그것은 논리적으로 사변화 되어가는 요즘 예술 경향에 대한 반발이기도 하다. 그에 반해 여러 사람이 참여하는 프로젝트의 경우에는 현재의 장애인 예술 상황에 대한 발언, 예술과 사회의 역할 등 좀 더 논리적이고 이성적으로 접근하는 것 같다. 과거 ‘뇌성마비작가회 날’의 작업이나 올해 있었던 프로젝트는 장애인의 신체적 상황과 사회를 바라보고 그것을 이슈화하려고 했다. 그렇지만 궁극적으로 나는 표현주의자인 것 같다. 지금 살아 숨 쉬는 나의 실존이 느끼는 ‘그것’이 나의 작업이고 관객의 실존이 나의 작업과 만날 때 나의 작업은 실존이 된다고 생각한다.

예술 활동을 하면서 영향을 받은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사실 어려운 것만 좋아했었다. 폼 좀 잡으려고. (웃음) 지금은 조금 힘을 뺐다. 요새는 가요를 즐겨 듣고 세상 모든 것에 관심을 가진다. 목적 없이 추종하는 것에 반대한다. 현재의 삶을 느끼고 공유하고, 모든 것으로부터 영향을 받고 있다. 고등학교 때 즐겨 듣던 라디오 프로그램 중에 <FM영화음악>이 있었다. 지금은 고인이 된 정은임 아나운서가 진행하던 프로그램이었는데, 그때 들었던 음악이나 영화에 관한 정보와 이야기가 관심과 애정으로 발전해 간 듯하다. 좋은 영화들을 많이 찾아보게 되었고 좋아하는 감독들도 생겼다. 그중 당시에는 생소했던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라는 러시아 감독의 영화를 극장에서 볼 기회가 있었다. 어려운 것만 좋아한 건 아마 이때부터 생긴 버릇인 것 같다. (웃음) 실제로 그의 영화는 아름답다. 하지만 쉽게 볼 수는 없다. 다행히도 나는 40년간 우리 집 거실벽을 장식하고 있는 세계문학전집과 함께 자랐다. 어릴 때 읽었던 단테나 괴테 외에도 러시아 작가들의 작품이 얼마나 훌륭한지 알고 있었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는 러시아 영화계의 도스토옙스키로 불린다. 그의 영화에서 예술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는 믿음을 배웠다. 나는 현재의 삶에서 영향받고 지금의 삶의 문제들을 예술로 치유할 수 있기를 바란다.

 

‘장애인 작가’라는 세상의 구별이나 의식 없이 작업으로만 이야기할 수 있는 세상이 중요할 듯하다. 작업할 때 있어 보람이나 기뻤을 때와 힘들 때는 언제인가?

장애는 궁극적으로 나를 구성하는 여러 조건 중 하나다. 장애는 외부에서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인간 존재를 구성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나의 작업이 나로부터 나온다면 나의 장애도 작업에 이미 내포되어 있을 것이다. 나는 그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장애인 작가’라는 말은 나에겐 단순 분류적 의미 외에 평가적 의미는 없다. 그러나 나의 장애가 이슈가 되어 내가 의도하지 않은 의미를 작품이나 작업에 부여한다면 그때 장애의 의미는 달라질 것이다. 대부분의 장애인 작가들은 그런 장애를 거부한다. 하지만 나의 작업에서는 장애가 주요 이슈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리고 장애를 이슈로 발언한 나의 작업을 통해서 사람들이 장애를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기 시작할 때 보람을 느낀다.

작가로서 어려운 점이라면 자생성과 지속성의 문제일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은 무엇인가?

세계 어느 곳에서도 작가, 예술가는 안정된 직업으로 인정받기 어렵다. 예외적으로 특출난 재능이 있는 작가가 아니고선 작가로서 인정받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많은 작가들이 그 기간을 못 버티고 전향한다. 그 이후에도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다른 일거리를 찾아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장애인 작가들은 그마저도 여의치 않다. 나도 활동을 시작한 후 10여 년간은 장애인 예술은 물론 신진작가에 대한 민간이나 정부의 지원을 거의 바랄 수 없었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 나는 운이 좋은 편에 속하지만 많은 장애인이나 비장애인 작가들은 지원제도의 사각지대에 있다.

활동이나 프로젝트 등 향후 계획이 있다면 이야기해달라.

10월에 다원예술행사 ‘페스티벌 옵신’에 참여가 계획되어 있다. 여기에 퍼포머로 참여한다. 전 아시아문화전당 예술극장 예술감독인 김성희 선생님이 감독으로, 안무가 노경애 선생님 작품에 출연한다. 그런데 코로나19가 더욱 확산되고 있는 상황이라 예의 주시하고 있다. 그리고 지난해 잠실창작스튜디오에서 발표한 <624>를 모티프로 작업을 발전시키고자 한다. 파노라마로 포착한 거친 모노톤의 광화문 풍경이었는데, 시간을 주제로 한다. 작품을 자세히 보면 표면에 실이 촘촘히 걸려있다. 624개다. 광화문이 그곳에 있은 지 624년을 상징한다. 이를 좀 더 발전시키고 확장해서 다른 건축물 다른 장소에 대한 이미지로 작업하여 내년에 개인전을 개최할 계획이다.

끊임없이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자신의 삶 속으로 구체화하는 작가를 보면서 다음 행보가 궁금했다. 그의 작업 <624>가 보여준 거칠지만 넓게 펼쳐진 풍경이 어떻게 변화할지, 그가 세상을 향해 발언한 메시지가 변화시킬 세상 풍경이 어떨지. 아이디어를 확장하고 이를 공유하고 그 결과 ‘작은’ 변화를 만들어내는 작가의 목소리에는 희망과 확신이 차 있었다.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는 작가의 자신감일 것이다. 오랜 시간 인터뷰를 마치고 작업실을 나섰다. 후덥지근하지만 근처 공원에서 불어온 바람이 잠깐씩 땀을 식혀준다. 길을 걸으며 그가 쓴 시를 떠올린다.

다시 혼자 걷자 영혼들의 안식처로

기쁜 순교자처럼 혼자서 이내 다가올 땅 / 밑을 흐르는 탁한 바람과 / 비명들의 영혼 이곳에서 잠들리라

모든 죽음을 넘어 이 계절에 우리가 다시 보아야 할 곳으로 / 다시 혼자서 걷자

– 문승현, <다시 혼자 걷자>

저녁어스럼(Early evening)

(Oil on canvas, 130.3×97.0cm, 2011)

P Series-A17

(Acryliconcanvas, 53.0cmX45.5cm, 2010)

P Series-A14

(Acryliconcanvas, 53.0cmX45.5cm, 2010)

4인터뷰_문승현작가프로필

문승현
미술작가, 기획자, 공연예술 연출가, 옐로우닷컴퍼니 대표. 협성대학교 미술학과를 졸업하고 2000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마음, 하늘을 바라보다》(2012), 《Soul Face》(2013), 《침묵 속 이야기를 그리다》(2018) 등 현재까지 총 9회의 개인전을 개최했으며,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뇌성마비 시각예술작가들의 모임 아티스트 그룹 ‘날’에서 활동했으며, 2011, 2012, 2016년 잠실창작스튜디오 입주작가로 활동했다. 〈선의 리듬〉(2014), 〈여러가지선〉(2015), 〈점점퍼지다〉(2016), 〈21° 11′〉(2018), 〈Voicebody〉(2018), 《흐르는 벽으로 대화하기》 등 다양한 공연에 퍼포머, 연출, 음악으로 참여했다. 제1회 이원형어워드상(2018), 2016 전국장애인도예공모전 올해의 작가상, 제6회 경향 미술대전 입선 등 다수의 수상경력이 있으며, 저서로 시집 『고해소 앞에는 등불이 켜져있다』가 있다.  

류동현
미술 저널리스트, 페도라 프레스 편집장.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와 성균관대 언론정보대학원을 졸업했다. 미술전문지 『아트』와 『월간미술』에서 기자로 재직했고, 문화역서울 284에서 전시 큐레이터를 역임했다. 『서울 미술산책 가이드』(공저), 『런던-기억』 등 몇 권의 책을 썼다. 현재 [페도라 프레스] 편집장, 미술 저널리스트, 전시 기획자로 활동하고 있고,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출강한다.  
fedorapres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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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박유미 미술작가  gomako1983@hanmail.net

박영균 미술작가   infebruary14@naver.com

작품사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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