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0set프로젝트 <관람모드-만나는 방식>

나를 이야기하는 방식

글. 조용신 뮤지컬 작가, 연출가

공연은 가을날 늦은 오후 해가 어스름히 서쪽으로 저물어갈 때 시작했다. 연극 관람을 위해 혜화동로터리 오르막길 초입에 위치한 ‘혜화동 1번지 실험극장’을 가끔 찾았지만 이날 장소는 극장 입구 옆 주차장이었다. 차를 일렬로 세우면 겨우 두세 대 정도 들어갈 좁고 기다란 시멘트 바닥 위에 임시로 설치된 가벽 사이의, 어디가 무대인지도 모를 아담한 공간이었다. 그 안에 배치된 열 개 남짓한 의자가 수렴하는 방향이 무언가 퍼포먼스가 펼쳐질 곳이라는 걸 짐작하게 할 뿐이었다.

 

0set(제로셋)프로젝트는 최근 장애 예술에 관해 꾸준하고도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작년 김원영과의 콜라보 프로젝트 <사랑과 우정에서의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에 관한 법률>에서 지체장애인으로서의 일상을 행하는 그의 몸을 그대로 관객에게 노출하면서 일상 속에 숨겨져 있던 ‘불편한 장벽’이 우리 주변에 여실히 존재함을 인지하게 하는 데 방점을 찍었다. 많은 비장애인이 실생활에서 목도하더라도 무시하거나 피해 가는 그 장벽을 드러내는 일종의 리얼리티 충격 요법을 사용했다. 장애와 비장애는 각기 다른 캐릭터와 기능, 성정의 차이일 뿐이며 장애 그 자체도 예술이라는 전체 틀 속에서 다양한 재료와 스타일의 하나로 작용할 수 있음을 증명하려고 한 것이다.

 

2020 혜화동1번지 7기동인 2020 가을 페스티벌 ‘맞;춤’의 첫 번째 작품으로 올라간 연극 <관람모드-만나는 방식>은 <사랑과 우정에서의…>에 비해 배리어프리에 대한 0set프로젝트의 기본 문제의식은 유지하면서도 보다 낭만적인 표현 방식을 사용했다. 이 작품에 참여한 세 명의 아티스트는 배경도 장애 여부와 종류도 모두 다르다. 이를 관객까지 확장한다면 애초부터 그 공간에 모인 사람들의 공통점이라고는 그날 그곳에 동시에 모였다는 특별한 인연 말고는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이렇게 모인 ‘다른 사람들’은 그 다름으로 인해서 존재할 수 있는 각자의 이야기를 저마다의 방식으로 펼쳐내고 이해한다.

 

유현주 배우는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 ‘코끼리, 족쇄, 시간이 흐른다/지나가다, 힘이 세지다, 불가/할 수 없음’ 이 다섯 개의 단어를 관객에게 수어로 가르쳐준다. 각 단어 설명이 끝날 때쯤 박하늘 배우와 홍성훈 작가가 각 단어를 음성과 문자로 전달하면 유현주 배우가 다섯 개의 단어가 들어간 코끼리 이야기를 수어로만 풀어나간다. 이때 음성동시통역은 없지만, 앞에서 배운 다섯 개의 단어가 포함된 열정적인 수어 연기를 통해 충분히 전달된다. 홍성훈 작가는 컴퓨터로 타이핑하면 스크린에 투사되는 문장으로 인사를 나눈다. 실시간 타이핑에서는 오타가 다시 수정되는 상황까지도 볼 수 있다. 객석 중간에서 박하늘 배우가 관객에게 스트레칭 동작을 권유하고 자신의 글과 홍성훈 작가가 보내온 텍스트를 낭독한다.

 

두 사람의 현장 퍼포먼스와 한 사람의 랜선 텍스트 참여로 이루어진 공연이 지속되면서 점차 해는 기울었고 스크린은 한층 밝아졌으며 관객은 살포시 내려앉는 어둠에 어깨를 내주었다. 이제 랜선 텍스트 생산자를 만나러 가는 여정이 시작되었다.

 

미리 제작된 영상이 상영되었다. 그 내용은 1인칭 카메라가 그 장소에서 출발하여 골목길을 돌아 혜화동로터리를 거쳐 마로니에 공원에 이르기까지 행인과 함께 몇 번의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며 걸어가는 여정이었다. 관객은 그 영상처럼 박하늘 배우의 뒤를 따라서 길을 걷기 시작했다. 가을의 공기를 더 느끼기 위해 신호가 바뀌어도 멈춘 혜화동로터리 신호등 앞에서의 기다림. 혜화역 4번 출구 앞 폐쇄된 서울연극센터 건물 울타리 안쪽 공간에 사는 길냥이를 한참 들여다보던 영상처럼 그 앞에 이르러서 고양이들을 찾아보느라 잠시 멈추었고, 저녁 시간에 분주하게 대학로를 걷는 친구나 연인들의 행렬과 마주하거나 나란히 걸으며 마로니에 공원의 한 공간에 도착했다. 그곳은 이음센터 5층 극장이었다. 입장 전 박하늘 배우의 텍스트를 꾹꾹 눌러 담아 필사할 수 있는 종이가 주어졌다. 그리고 무대에는 홍성훈 작가가 있었다. 그는 휠체어에 앉아 컴퓨터로 타이핑을 했고, 자신의 타이핑 텍스트가 투사된 바닥을 이동하며 궤적을 만들었다. 박하늘 배우는 다시 한번 그의 텍스트를 소리 내어 읽었고 함께 이동한 유현주 배우는 다시 한번 열정적으로 이야기를 전달했다. 이번에는 수어통역사와 함께.

 

이 작품은 횡적으로 종적으로 다양한 요소와 양식이 분포해있다. 모노드라마, 시낭송회, 패키지 투어, 그리고 휠체어 퍼포먼스까지. 중요한 것은 이 작품에서 보여주는 많은 것이 열려있었고 그날 주차장의 공기와 거리의 소음, 랜선을 넘나드는 텍스트 모두 다 즐길만한 재미가 있었다. 배리어(barrier, 장벽)를 진정으로 넘어서는 것은 그 존재를 인지하면서도 그것이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자리하는 것이라고 할 때, 올해 공연된 <관람모드-만나는 방식>은 확실히 작년에 비해 표현 방식이 좀더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사색이 담겨 있었다.

 

공연 관람을 마치고 나온 마로니에 공원은 어두웠다. 사람들은 밝은 곳으로 종종걸음을 하고 있었다. 쌀쌀한 공기에도 따스함을 느끼게 해준 공연. 이 프로젝트의 다음 행보가 기대되는 이유다.

<관람모드 – 만나는 방식>(0set) 공연소개 수어 영상
[출처] 혜화동1번지7기동인 유튜브

관람모드–만나는 방식
0set프로젝트 | 2020.10.12.(월) ~ 10.15.(목) | 혜화동1번지소극장 및 주변거리

2020년 혜화동 1번지 7기동인 가을페스티벌 ‘맞;춤’(10.12~12.27.)의 첫 번째 작품. 내가 나이기를 위한 만남 그리고 서로를 만나기 위한 만남을 준비한다. 그 만남을 위해 필요한 시간과 거리는 얼만큼일까. 어떤 과정을 거쳐야 우리는 그 시간과 거리를 함께 경험할 수 있을까. 만남을 약속하고 준비하고 기다리고, 비로소 만나서 고르고 고른 이야기들을 ‘나’의 방식으로 건네고자 한다. 우리가 함께 있음으로써 자기 자신으로 남을 수 있게 되는 만남의 방식이 일어나기를 기대하면서.

프로필_조용신

조용신

오랫동안 뮤지컬 작가/연출가/예술감독으로 일하고 있다. 뮤지컬 <모비딕> <도리안 그레이>, 연극 <지구를 지켜라> 등에서 대본/연출을 담당했다. 현재 CJ문화재단 아지트 대학로 극장에서 창작뮤지컬 개발을 담당하고 있다.
yongshiny@hotmail.com

사진제공. 0set프로젝트

2020. 1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