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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렉스 퍼포먼스 제작의 몇 가지 관점

발달장애 관객만 편안한 극장? 모두에게 특별한 극장!

글. 권주리 아주특별한예술마을 대표

오늘도 공연장에서 쫓겨났습니다

 

복지관에서 진행한 발달장애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연극 프로그램에서 다 함께 대형 공연장에 뮤지컬을 관람하러 갔었다. 깜깜하고 낯선 공연장 안으로 들어가지 않겠다는 아이의 손을 잡고 계속해서 설득하며, 겨우 공연장의 문을 열고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공연이 시작되자마자 여기저기서 수군거림이 들려왔다. “뭐야? 얘 왜 자꾸 움직여? 안 보이잖아.” “시끄러워 죽겠네. 부모가 좀 조용히 시키지 뭐 하는 거야, 예의 없게.”

 

직접적으로 ‘조용히 해요’라고 말한 사람은 없었지만, 주변의 많은 사람이 우리에게 눈치를 주었다. 평소 상황이라면, 극장이 아닌 환경이었다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아이가 발달장애를 가지고 있어요. 불편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니 조금만 이해를 부탁드릴게요.” 하지만 극장에서는 말을 하는 것 자체가 금기시되기에 나는 그저 아이의 손을 강하게 잡고 귓속말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극장 안에서는 조용히 해야 해. 쉿! 계속 이렇게 소리 내면 밖으로 나갈 거야.”

 

협박성 멘트를 반복하며 5분 정도가 흘렀다. 아이는 소리를 내며 몸을 좌우로 움직이는 것에서 더 나아가 아예 의자 위로 올라가 벌떡 일어나 버렸다. 순간 큰 술렁임이 우리 주변을 감쌌다. 더는 자리에 앉아 공연을 관람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아이와 함께 극장 밖으로 나왔다.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아이의 보호자가 씁쓸한 표정으로 아이의 손을 잡고 말했다. “괜찮아요, 선생님. 어차피 우리 애는 공연 같은 건 못 봐요. 감사합니다.”

 

뭐가 감사한 걸까. 돈을 주고 표를 샀는데도 아이는 공연을 5분도 보지 못하고 퇴장해야만 했다. 물론 의자 위에 올라가거나 소리를 내서 주변 관객들의 관극을 방해하는 것은 분명히 적절치 못한 행위이지만, 아이는 ‘일부러’ 사람들을 방해하기 위해 그렇게 행동한 것이 아니다. 어쩌면 나름의 방식으로 공연을 즐기고 있다는 반응이었을지도 모른다.

 

발달장애 관객은 위 예시처럼 극장에서 공연을 관람하는 것 자체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관객의 반응이 수용되는 아동극이라 할지라도 발달장애 관객의 특수한 소리와 움직임, 행동들을 수용해 줄 수 있는 공연은 없다. ‘공연 진행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다른 관객들의 관극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안 된다는 입장에 뭐라 답할 말이 없었다. ‘아주특별한예술마을’은 이러한 극장과 공연의 형태를 완전히 바꾸어 보고자 만들어진 단체다. 발달장애인도 아무런 걱정 없이 극장을 찾을 수 있도록, 수군거림에 기죽어 부모가 먼저 아이의 손을 잡고 극장 밖으로 나가는 일이 없도록.

릴렉스 퍼포먼스?

 

영국 내셔널시어터(National Theatre)에 의하면, ‘릴렉스 퍼포먼스’(Relaxed Performance)란 자폐 스펙트럼 장애나 지적장애가 있는 사람을 포함하여 더욱 편안한 환경에서 공연을 관람하기 원하는 모든 사람을 위한 공연이다. 발달장애를 가진 아동·청소년·성인 관객의 도전적 행동, 특별한 소리, 감각적 특성에 의한 반응 등이 공연을 관람하는 데 있어 문제가 되지 않도록 극장과 공연의 대내외적 환경을 조절한다. 그렇다고 해서 특정 형태의 공연만이 릴렉스 퍼포먼스가 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형태의 공연이든 적절한 환경 조성만 이루어진다면 릴렉스 퍼포먼스가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무엇(what)’이 아니라 ‘어떻게(how)’다.

경계를 낮추고 관객에게 집중하기

 

아주특별한예술마을은 지난 9년 동안 다양한 방법으로 발달장애 관객을 위한 연극을 만들어왔다. 2012년에 〈헨젤과 그레텔〉 원작을 바탕으로 관객참여형 공연을 제작했다. 공연장 전체를 2개의 구역으로 나눠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 관객이 이동하며 직접 극 속에 존재하도록 했다. 극 진행 중 한 관객이 직접 나서서 마녀의 열쇠를 훔쳐 오는 등 흥미로운 반응들이 꽤 많았다. 발달장애 관객을 위한 공연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목표는 달성했지만, 소규모 관객만 참여가 가능하다는 점, 연극놀이와 공연의 경계에 있다는 점에서 다시 한번 고민을 시작했다.

 

‘발달장애 관객을 대상으로 하는, 관극이 중심이 되는 편안한 공연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2014년에 〈느릿느릿 엉금엉금 거북이〉 초연을 올렸다. 이전에는 관객 참여에 중심을 둔 체험형 공연이었다면 이 공연은 무대와 객석 구분이 존재하는 관극형 공연이었다. 물론 구분을 둔다고 해서 완벽하게 둘 사이를 떨어뜨려 놓진 않았다. 객석이 따로 구분되지 않은 박스형 공연장에서 관객은 편안하게 앉거나 누워서, 혹은 공연장 안을 걷거나 뛰어다니면서 극을 관람했다.

 

또한 관객의 특성에 맞춰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고자 집중했다. 극 중 암전을 없애고, 객석 조명을 적정 밝기로 공연 내내 유지했다. 음향이 커지지 않도록 조절하고 원한다면 공연 중에도 언제든지 로비 공간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두었다. 공연 전, 배우들은 로비에서 관객과 만나 익숙해지는 시간을 가졌고, 낯선 공간에 대한 거부감을 줄이기 위해 공연 전 극장을 탐색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제공했다.

 

그렇게 몇 해 동안 전국을 돌며 장애 여부와 관계없이 다양한 관객들을 만났다. 그 과정에서 알게 된 새로운 사실이 있다. 발달장애 관객이 극장에서 공연을 관람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발달장애인에게 적합한 형태의 공연”이 아니라, “극장의 태도”였다.

최우선 순위 = 극장의 태도

 

극장을 구성하는 수많은 사람의 태도, 공연장 자체의 태도에 따라 발달장애 관객의 공연 관람 여부가 결정됐다. 극의 형태, 대사 유무 보다 우선시 되어야 할 것은 공연을 이루는 모든 사람의 태도였다. 발달장애 관객을 위한 공연을 만들기 위해 시도했던 예술적·기술적 접근보다 극장 문 앞에 서 있는 스태프의 태도가 관객의 마음에 더 깊게 가닿았다. ‘당신의 있는 모습 그대로 우리가 함께하겠습니다’ 하는 태도가 관객을 극장 밖으로 내쫓지 않을 수 있었다. 여기서 ‘태도’란 단순히 대상을 대하는 자세나 모양새를 넘어선 ‘접근 방식’을 뜻한다. 아무리 훌륭한 내용의 공연이라도 장애 관객을 위한 완벽한 서비스가 제공되는 공연장이라도 ‘장애 관객을 대하는 태도’가 적절하지 않다면 그것은 릴렉스 퍼포먼스가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 태도를 만들어야 할까?

 

첫째, 창작자로서 ‘릴렉스 퍼포먼스가 왜 필요한가.’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반드시 정리해야 한다. 이것을 한다고 해서 높은 수익을 보장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평등한 예술을 지향하는 훌륭한 예술가라는 타이틀을 얻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공연 중 발달장애 관객이 소리를 지르며 무대 위로 뛰어나가 공연이 중단되고 다른 관객들의 불쾌한 얼굴을 마주해야 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릴렉스 퍼포먼스를 해야 한다면 왜일까. 시혜적 차원도 아니고, 개인의 만족도 아니라면 그 이유는 무엇이어야 할까. 이것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왜 함께 살아야/교육받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과 같은 맥락으로 바라볼 수 있다. 거창한 이유를 찾을 필요 없이, 그것은 당연히 되어야만 하는 일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창작자 스스로가 만드는 릴렉스 퍼포먼스의 모든 것을 압축시킨다.

 

둘째, 모두에게 편안한, 릴렉스 극장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접근이 쉬운 위치의 공연장, 여유로운 주차장, 충분한 의자가 있는 대기실, 깨끗한 화장실, 외부로 쉽게 나갈 수 있는 통로, 밝은 빛이 들어오는 창문, 공연 전 탐색하고 놀 수 있는 관련 용품, 원하는 대로 선택해서 앉을 수 있는 좌석 구성, 안정감을 주는 부드러운 카펫 바닥 등. 발달장애 관객이 편안하게 느끼는 환경은 모든 사람에게 편안함을 준다. 장애 관객을 위한 특별한 접근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특별한 접근이어야 한다. 물론 이런 공연장을 찾는 건 쉽지 않고, 이곳에서 릴렉스 퍼포먼스를 통한 수익을 얻는 것은 더욱 어렵다. 그렇기에 공연팀 내에서의 시도와 노력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보다 구조적인 형태의 지원이 필요하다. 브로드웨이의 ‘공연발전기금’(Theatre Development Fund)을 통한 ‘자폐성장애 친화 공연’(Autism-Friendly Performance, AFP)과 같이 공연의 특정 회차를 모두를 위한 릴렉스 퍼포먼스로 오픈하는 것이 우리나라에서도 필요하다.

 

셋째, 발달장애 관객에 대한 정확한 정보와 지식을 극장 내 모두가 공유해야 한다. 발달장애의 원인에 대해 읽고 쓰며 공부하라는 것이 아니다. 공연 관람과 관련된 발달장애 관객의 특성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왜 암전된 상태에서 소리를 지르는지, 왜 공연 중 무대 위로 올라와 조명 아래에서 빙빙 돌고 있는지, 왜 ‘자리로 돌아가 주세요.’라고 말해도 듣지 않고 계속 극장 안을 뛰어다니는 건지. 대부분의 배우와 스태프가 발달장애 관객을 대상으로 하는 공연을 해 본 경험이 거의 없기 때문에 공연 전 프리 프로덕션 과정에서 반드시 거쳐야 한다. 공연 도중 무대 위로 올라온 관객의 손을 잡아끌어 내리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배우들이 극 안으로 해당 관객을 흡수시켜서 새로운 상황으로 이끌어갈 수 있을지 준비할 수 있다.

모두를 위해 특별한

 

아주특별한예술마을은 먼 길을 돌고 돌아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발달장애 관객을 위한 ‘특별한’ 공연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니, 눈앞에 날 것 그대로의 무대와 관객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후 2017년 〈행복한 늑대〉를 발달장애 관객을 위해서만 하는 공연이 아니라, 장애 여부와 관계없이 모두를 위한 공연으로 제작했다. 관객 누구나 가장 편한 자세와 상태로 공연을 관람했고, 원한다면 언제든지 공연장 안팎을 드나들며 휴식 시간을 가졌다. 물론 여전히 무대 위에서 뛰어다니는 관객이 있었지만, 극장 안 모든 사람의 열린 태도가 그 관객의 날쌘 발걸음까지 따뜻하게 감싸주었다. 그 안에서 늑대도, 관객도 모두 행복할 수 있었다.

필자사진_권주리_

권주리

아주특별한예술마을 대표. 단국대학교 특수교육과를 졸업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전문사 아동청소년연극전공을 수료했다. 발달장애를 가진 아동·청소년·성인들과 함께 연극 작업을 하며, 모두에게 평범한 삶의 선택을 찾아가고 있다.
01190048919@naver.com

사진제공. 권주리

2020. 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