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무장애예술주간 탭톡 세션3 ‘영국의 장애 운동과 장애 예술의 역사, 그리고 희곡’

위대한 마지막 아방가르드 운동

글. 홍은지 연출가·신촌문화발전소 소장

 

“(…) 난 욕조에 물을 잔뜩 받아서 오랫동안 거품 속에 떠 있는 일을 가장 먼저 할 것 같아요. 생각만으로도 유혹적이에요. 물속에서 난 무게가 없거든요. 마치 인어처럼. 나만의 환경 속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는 거죠. (중략) ‘넌 익사할 게다. 난 경고했다. 그리고 너 혼자 살다가는 그 집을 싹 태워 먹고 말 게다. 금방 아수라장 속에서 살게 될 게다.’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렇게 된다 해도 그건 나의 아수라장이잖아요.”

– 〈물속에서 나는 무게가 없어〉 중

 

‘무장애예술주간: No Limits in Seoul’은 2020년 첫해를 맞아 국내외 공연예술가 및 전문가가 참여하여 장애 예술 운동의 흐름과 예술 실천을 살펴보고 담론의 장을 만들어가는 자리를 마련했다. 팬데믹 시대, 온라인상에 마련된 국제교류 플랫폼에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펼쳐졌다. 그중 영국의 대표 장애 예술 희곡작가 케이트 오라일리(Kaite O’Reilly, 이하 오라일리)의 작품 〈나인 프리다(the 9 Fridas)〉(안경모 연출)와 〈물속에서 나는 무게가 없어(In Water I’m Weightless)〉(안정민 연출)가 낭독공연으로 소개되었다. 이후 온라인 포럼 시리즈 탭톡(Tap Talk) 세션3 ‘영국 장애 운동과 장애 예술의 역사, 그리고 희곡’을 통해 작가와 낭독공연의 연출가가 다른 공간에서 랜선을 타고 함께 이야기 나누는 자리를 이어나갔다. 여기에서는 이 자리에서 오간 이야기를 중심으로 작업과정을 둘러싼 쟁점들을 전한다.

 

먼저 오라일리는 자신을 아일랜드 출신의 오십 대 백인 여성, 파란 눈에 비대칭 곱슬머리, 검은 셔츠를 입고 서웨일스의 서재에서 접속한다고 소개했다. 이어 ‘장애 예술은 마지막 위대한 아방가르드 운동’이라고 묘사한 예술가 잉카 쇼니바레(Yinka Shonibare)의 말을 인용하는 것으로 발제를 시작했다. 영국의 장애 예술은 초기 페미니즘, 흑인 인권운동과 마찬가지로 삶에서 소외되고 배제되는 부당함에 대한 분노로 폭발하여 사회정의와 시민권을 요구하는 정치적 운동에서 비롯되었음을 강조했다. 장애 예술은 “장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위해, 장애가 있는 사람들에 의한, 장애가 있는 사람들에 대한 작업”으로 정의될 수 있으며, 장애가 있는 참가자들이 창작하고 주도하는 작품이다.

 

특히 영국의 경우 이는 장애의 사회적 모델에 기반한 정치적이면서 문화적인 표현이다. 장애의 사회적 모델은 종교적 모델, 의학적 모델과 달리 장애를 특정 사회의 가치, 편견, 두려움을 반영하는 사회적 구조로 바라본다. 지배적 문화가 그들을 대표하고 대신 인식하려고 할 때 장애가 단순히 개인적 불행이자 비극이라는 관점으로 보이는 것을 거부하며, 장애를 치료, 인내, 극복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내는 서사와 가정을 거부하는 태도로부터 출발한다는 것이다. 그는 장애가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고 독특한 예술가이자 작가로서 관점을 주었고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었다며 말을 이어나갔다.

 

오라일리의 연극작업은 청각장애 문화와 청각 문화, 장애 문화와 주류문화 사이에서 개발한 대안적 드라마투르기를 참고로 하여 장애인에 대한 부정적 표현이나 가정에 대해서 되묻거나 또는 이를 뒤집는다. 고대 그리스로부터 서양 연극사가 시작된 이래 많은 작품 안에 장애인 캐릭터에 대한 고정관념이 반영되어왔다. 초인적인 능력과 불굴의 의지로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는 소위 슈퍼크리프(super crip)이라고 불리는 인물이거나 또는 어떤 선택 의지도 없는 수동적인 자선 수혜자로 씁쓸하게 왜곡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극작가 스스로 장애 경험을 바탕으로 글을 쓰는 경우가 매우 드물기 때문이다. 또한, 관객은 이런 필터링을 통해 장애 경험을 이해했다고 믿지만 정작 삶의 진실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비정형적 신체에 부정적 의미를 부여하는 오랜 문화 언어적 관습을 경험하고 학습하게 된다. 장애 예술과 문화의 출현은 이를 변화시켜왔다. 오라일리는 새로운 주인공을 창조하고 다른 서사와 결말을 만들어 냄으로써 내용, 표현, 미학 그리고 형식의 가능성을 열고 이야기의 내용뿐만 아니라 누가 어떻게 그 이야기를 전달하는지도 바꿀 수 있다고 강조한다.

 

“저는 이것을 ‘장애인 분장연기’라고 부릅니다”

 

특히 그는 비장애인 배우가 장애인 역할을 하는 문화적 관행에 대해 비판한다. 20세기 영화와 연극에서 백인 배우가 흑인으로 분장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21세기에는 장애인을 이용한다는 것이다. 또한, 앞으로도 비장애인이 장애인 역할을 맡는 경우 자신의 작품 저작권을 절대 허락하지 않겠다 단언한다. 하지만 이렇게 비정형적인 신체를 무대에 올리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장애인과 함께하는 연극적 시도는 고무적이지만 주의해야 하는 사항이 있다. 비정형 신체는 중립적이지만은 않다는 점이다. 장애인을 무대에 올리는 것 자체가 반드시 급진적인 것은 아니며, 비정형 신체가 신체의 실재성을 넘어 극적으로 표현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속에서 나는 무게가 없어〉 초연에서 배우들은 작가가 작성한 독백에서 본인들이 공연할 내용을 선택했고 나아가 그들이 무대에서 어떻게 배치되고 표현이 되는지도 스스로 결정했던 선례를 들며 앞서 말한 사회적 장애 모델에 의한 정치화된 장애 관점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힌다.

 

이와 관련하여 안경모 연출은 <나인 프리다> 공연을 준비하며 고민했던 부분에 대해 “프리다 칼로를 재현하는 것이 이 작품의 목적은 아니라고 보았다. 프리다의 삶에서 보여지는 고통과 고민, 삶과 세계와의 갈등 관계 속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모습이 현재 나의 모습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라고 전했다. 안정민 연출은 “이 희곡이 아름답고 풍자적이었기 때문에 모두 빠뜨리지 않고 읽고 싶었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당사자성이 매우 중요한 작품이라고 여겨졌다. 그렇기 때문에 이를 살릴 수 없는 많은 부분을 공연에 포함하지 않는 선택을 하게 되었다. 이 희곡은 ‘나의 말’로 가득 차야 한다고 생각했다.”라며, 〈물속에서 나는 무게가 없어〉 희곡이 열어주는 많은 감각에 다가가고자 노력했지만 결국 이 작품의 제작진이 모두 장애인 당사자로 구성되어야 하지 않았을까 반문했다.

 

이에 대해 오라일리는 “전부 장애인으로 구성된 배우들과 함께 작업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필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지금 현재 이 작품이 어떤 울림을 가지고 있는가, 실제로 이를 더 증폭시켜나가기 위해 무엇을 택하고 버릴 것인가에 집중하고 공감의 지점을 만들 수 있다면 충분히 구현이 가능하다.”라고 답했다. 당사자성의 문제가 전체 창작과정에서의 다양성이나 다양한 관점의 공존을 배제하거나 억압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의미에서다.

 

한편 장애 예술은 ‘주류예술이 아니다’ ‘제3의 영역이다’ 등의 이유를 들어 예술적으로 기대를 받지 못했고 표현의 기회 자체가 별로 없었기 때문에 그 가치를 끌어올리기 위해 큰 노력과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때에도 주의해야 할 것은 예술 전반의 관습을 그대로 따를 것이 아니라 고유의 관점을 찾아야 함을 상기시킨다. 주류예술과 차별되는 다른 관점과 소통방식, 미학적 탐구, 실험정신을 통해 우리가 이전에 보지 못했던 가치를 발견하고 대안적인 작업방식을 제시함으로써 정신을 일깨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것이 아방가르드 운동과 맞닿아 있는 지점이며, 장애 예술의 예술적 작업의 가능성은 무한하다고 말한다.

 

이는 접근성의 미학과도 연결되며, 관객에게 제공되는 접근 도구(access tool)를 무대디자인의 중심요소로 배치하여 창의적으로 사용하는 작업방법을 제안한다. 헤드폰을 이용해서 음성해설을 듣거나 자막이 내장된 스마트안경을 사용하는 등 장애를 위한 부가적 서비스로 제공됨으로써 오히려 관객이 분리되거나 위계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내장된 음성해설, 시각언어와 음성언어를 함께 사용하는 다중언어 작품, 각자가 선택하는 채널을 통해서 모두가 공연에 동등하게 참여할 수 있는 작품. 이런 장치들은 접근성을 높일 뿐 아니라 연극과 문화에 뿌리 깊게 자리한 추종과 위계를 전복시키고, 누군가를 위해 해줘야 되는 것이 아닌 작품의 예술적 가치가 더하게 될 것이라 강조했다.

 

오라일리는 사회의 잘못된 인식처럼 장애(disabled)의 반대가 비장애(abled)가 아니며, 무언가를 가능하게 한다는 의미의 ‘enabled’을 새로운 용어로 제안한다. 비장애는 일시적 상태일 뿐 질병, 나이, 사고, 소모 등을 통해 결국은 손상되기에, 장애와 비장애는 양극으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연속 선상에 있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취약성’은 ‘결함’이나 ‘실패’ 등 외부의 침입과 위험에 노출된 인간이 피해야 할 치명적 오점으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인간은 ‘생존을 위해서는 타자에 의존적일 수밖에 없는 상호의존적인 불안정한 존재’라는 관점에서 취약성은 인간의 예외적인 상태가 아니라 모두가 겪을 수 있는 존재론적 본질의 상태이다. 신체장애는 보편적 취약성의 특별한 발현일 뿐 제거하고 정상화할 대상이 아니라 관리해야 할 일상적 삶의 양상이다. 취약성은 우리가 몸을 가지고 있기에 겪는 것이며 우리는 언제든 ‘상처’ 입을 가능성이 있다. 전 지구적 재난의 한가운데를 지나며 서구 근대사회에서 중요시하던 독립적이고 이성적이며 자주적인 주체는 그 시대가 그려낸 ‘신화’일 뿐 우리 모두 ‘취약한 존재’라는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겨본 시간이었다.

<나인 프리다(the 9 Fridas)>(안경모 연출)

<물속에서 나는 무게가 없어(In Water I’m Weightless)> (안정민 연출)

무장애예술주간 탭톡 세션3 ‘영국의 장애 운동과 장애 예술의 역사, 그리고 희곡’
2020. 11.12.(목) 오후 5시 | 온라인 생중계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이 주최한 ‘무장애예술주간: No Limits in Seoul’에서는 장애와 컨템퍼러리를 주제로 국내외 공연예술 단체들이 장애를 동시대의 맥락에서 다루는 다양한 시각을 보여주고자 온·오프라인에서 다양한 행사가 펼쳐졌다. 그중 탭톡 세션3에서는 ‘영국의 장애 운동과 장애 예술의 역사, 그리고 희곡’을 주제로 영국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케이트 오라일리의 발제와 그녀의 희곡을 연출한 안경모·안정민 연출의 토크가 이어졌다. 전 세계 16개국에서 작품을 선보이며 국제적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오라일리는 2012년 런던 패럴림픽/올림픽을 위하여 〈물속에서 나는 무게가 없어〉를 발표했다.

 

무장애예술주간 낭독공연
2020. 11.12.(목) ~ 11.13.(금) | 온라인 상영 (*나인프리다는 생중계 후 온라인상영)

 

물속에서 나는 무게가 없어(In Water I’m Weightless)
연출 안정민 | 출연 서지원(장애여성공감), 김지수(극단 애인), 강보람(극단 애인), 조주희(극단애인)
이것은 새로운 감각에 대한 작품이다. 대사를 읊조리면 물속에 다리를 넣고 휘저을 때의 신선하고 낯선 느낌이 입에 돈다. 다리를 둘러싼 피부가 새로운 온도를, 새로운 촉감을, 그러니까 모든 것이 완전히 다른 공간을 경험하는 것처럼. 이것은 잊은 감각을 찾아줄 것이다.

 

나인프리다(The 9 Fridas)
연출 안경모 | 출연 김범진, 김미진(장애여성공감), 황철호(다빈나오), 현정희, 이수진
화가 프리다 칼로의 인생과 그림을 다양한 독백과 코러스 대화로 그려낸 작품. 장애와 고통, 인종, 종교, 문명, 사랑, 젠더, 모성, 정치와 예술 등 프리다 칼로의 삶을 구성하는 다양한 모습으로 분할 했고, 특히 이 과정을 마야문명의 사후세계로 가는 여정에 담았다.

∙무장애예술주간 홈페이지 : http://nolimits.kr/2020/

프로필사진

홍은지

다양한 공연방식을 고민하고 고안하며 여러 분야의 아티스트와 함께 공연예술 연출작업을 해왔다. 현재 신촌문화발전소 공간운영에 참여하고 있다.

eufy6542@daum.net

2020. 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