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좌담] 장애 예술 창작 활성화와 ‘무장애예술주간 No Lmits in Seoul’

더 깊이 있고 밀도 높은 교류의 장으로

김남수, 김원영, 박윤조, 성무량, 오세형

개요
일시
2020년 12월 08일(화) 오전 10시 30분~12시 30분
장소
온라인(zoom)
참석자
좌장 : 오세형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사업운영팀장)
패널 : 김남수(드라마투르그), 김원영(변호사, 연극배우), 박윤조(주한영국문화원 아트디렉터), 성무량(공연기획자, 무장애예술주간 프로그램 디렉터)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김남수, 김원영, 박윤조, 오세형, 성무량

비대면 무장애예술주간이 던진 의제들

오세형올해 봄부터 준비하여 11월 9일부터 19일까지 11일간 ‘무장애예술주간 No Limits in Seoul’(이하 예술주간)이라는 행사를 진행했다. ‘국제교류’와 ‘창작 활성화’라는 두 가지 목적으로 기획하였으나 아쉽게도 코로나19로 인해 영상과 토크 프로그램 중심으로 온라인에서 진행하게 되었다. 오늘은 행사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고 관심 있게 지켜보신 네 분을 모셨다. 예술주간을 돌아보며 좋았던 점이나 문제점 등 가벼운 이야기로 시작하여 국제교류와 창작 활성화를 위한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이하 장문원)의 역할, 장애 예술의 성장 방향에 대한 굵직한 이야기까지 이어졌으면 좋겠다.

성무량  예술주간을 마친 지 한 달이 안 되었다. 아직 어떤 면에서 성공했고 실패했는지 잘 모르겠다. 오늘 좌담에서 여러분의 솔직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 저는 축제를 통해 공연예술계에서 일하기 시작했는데 당시 접한 공연 대부분이 동시대 예술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10년 정도 일했지만 장애 예술에 대해 특별히 생각해 본 적이 별로 없었다. 그러다 최근 장문원 ‘이음 해외 공연 쇼케이스’ 작품을 보면서 컨템퍼러리가 바로 여기에서도 일어나고 있다고 느꼈다. 그래서 한국 장애 예술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해외 장애 예술이 발전해온 맥락을 보여줄 수 있는 방식의 축제로 접근해보고자 했다. 즉 해외 파트너와 민간단체, 개인 등 여럿이 같이 움직이면서 열린 네트워크를 만들면 한국 공연예술계 전반에 어떤 조그마한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인해 해외 작품이 전혀 내한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서, 영국문화원과 해외 파트너 등에서 다양한 영상을 추천받아 온라인으로 대체하는 것이 저희가 할 수 있는 대안이었다. 그러다 보니 올해는 프리(pre) 페스티벌처럼 된 부분이 있다.

박윤조  영국문화원에서 지난 2~3년 동안 집중하고 있는 부분 중 하나가 노인과 장애였다. (코로나19 상황으로) 국가 간 이동에 제약이 있다는 측면에서 디지털이 가능성이기도 하지만 한계이기도 하다. 디지털 플랫폼들이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는 것 같지만 어떻게 보면 굉장히 소수만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이 있었다. 앞으로 비대면 상황이 아니더라도 계속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 같다. 통상 영국문화원이 함께 기획한 온라인 디지털 공연을 봤을 때 아무리 큰 대작이라 하더라도 관람 시간이 7분 남짓으로 짧았다. 디지털 매체를 통해 확장성을 어떻게 추구할 것인가 고민이다. 이번 예술주간에 관심 있는 분들에게 좀 더 쉽게 장을 열어줄 수 있었다는 점은 긍정적이었다. 형식과 내용이 반대되는 행사는 설득력이 없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예술주간은 수어 통역, 문자 통역 등 접근성을 제공하기 위해 의미 있는 시도를 많이 했으며 첫발을 잘 떼었다고 본다. 이러한 다양성을 실행하고 접근성을 향상하기 위해서는 비용이 많이 드는데 어떻게 지속할 수 있을지 고민해 볼 지점이다.

김원영  영상으로 공연을 보는 건 개인적으로 재미없었고 너무 큰 한계를 느꼈다. 제가 공연예술을 좋아하는 이유는 실제 공간에서 몸과 몸이 만나 가지게 된 감각들 때문이었고, 그래서 직접 참여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러한 매력이 디지털화됐을 때 다 사라진다. 그것은 매체의 한계이기도 하고 제가 전통적인 감각을 가져서 일 수도 있다. 예술주간에서는 현재의 한계 속에서 동원 가능한 여러 자원을 잘 활용하여 전체 프로그램이 체계적이고 부드럽게 넘어갔다고 생각한다. 특히 개인적으로 궁금했던 안무가 키아라 베르사니가 참여한 오디오 퍼포먼스와 토크 프로그램을 관심 있게 봤다. 하지만 이번에도 해외사례를 소개하는 구성이 주를 이뤄 아쉬움이 있었다. 하이징스, 스탑갭댄스컴퍼니, 백투백시어터 등 장애 예술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알법한 단체가 계속 소개되는 측면이 있다. 물론 이들의 공연을 다 본 것도 아니고 더 많이 이야기되어야 하지만, 우리가 디지털로밖에 만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어차피 제한적인 사람이 접속하는데 일방적으로 소개받는 프로그램은 넘어설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접근성을 위해 수어나 문자 통역을 하듯이 우리나라에서 작업하는 분들의 영상 콘텐츠를 영국이나 이탈리아 쪽에 영어 동시통역 등을 통해 소개하고, 그들도 우리의 작품을 보고 얘기를 듣는 식의 교류가 좀 더 일어나면 좋겠다. 우리나라에도 오랫동안 작업한 단체들이 있고 그들이 다양한 자극을 받고 기회를 얻는다면 좋은 작업을 많이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장애 예술은 항상 주류에서 외부로 나가는 타자성을 전제한다고 생각한다. 영국이 현재 장애 예술에서 주류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만큼, 우리의 작업이 그들에게 소개되는 것이 영국의 입장에서 보아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김남수  직접 몸을 느끼고 접하는 아날로그 방식에서 갑자기 모든 게 디지털로 바뀌면서 가장 달라진 것은 공기의 문제이다. 무대와 객석 사이에서 흐르던 기류가 지금은 디지털 기기를 활용해서 개인적이고 주변 환경적인 공기로 바뀌었는데, 앞으로 어떤 기술적인 혁신과 보완이 나올지 모르겠다. 공연이 영상에 얹혀서 전달되면 너무 볼품없는데, 어떻게 사람을 유인하고 매력을 발산하는 방식을 찾게 될지 딜레마 상태인 것 같다.

올해 예술주간은 상당히 의미 있는 실험과 기획을 보여줬다. 예술주간을 통해 어떤 개인이 가지고 있는 감각이나 본능 속 무엇인가를 바라보게 되는 식으로 이동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예를 들면 이번에 온라인 상영한 리미니 프로토콜의 〈퀄리티 컨트롤〉은 굉장히 평범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상당히 정교하고 세련된 카메라 기법을 썼는데도 그렇게 효과적이지 않았던 것 같다. 오히려 키아라 베르사니의 오디오 퍼포먼스처럼 영상을 포기해버린, 완전히 청각적인 방식으로만 공연을 감상하게 한 것만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베르사니의 문법을 봤을 때는 뭔가를 실험적으로 시도했다기보다 기존에 빼곡하게 가득 차 있던 것을 잔뜩 빼버린 듯한 느낌을 받았다. 화면은 검은 상태이고 소리 전달은 귀를 기울이게 하는 전통적인 방식이었는데 상당히 의미심장하게 봤다. 그동안 차 있던 물이 다 빠져나가고 새 물을 채우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호주 백투백시어터도 장애 퍼포머 두 사람이 몸의 감각에 절대적으로 기대어 펼치는 공연 언어가 전체를 압도했다. 그런 상황 전개가 이전에 관성적으로 흘러왔던 방식과의 의미 있는 단절로 받아들여졌다. 빔 벤더스의 다큐멘터리 영화 <피나>를 보고, 3차원 공간에서 보았던 피나 바우쉬와는 다른 어떤 비밀스러운 지식을 얻었다. 3D 기술로 <봄의 제전> 속 무대에서 보이지 않았던 3열 댄서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등 디지털 기술이 제가 볼 수 없었던 것을 꿰뚫어 보게 했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 공연 디지털화 기술은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이다. 예술주간을 보며 장문원에서 디지털화되는 공연문화를 견인하거나 추동할 수 있는 첨단기술을 제안하거나 장기적으로 영상 문법을 고민해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과도기적인 단계가 될 텐데 지금의 문화 지체(cultural lag) 현상을 장애 예술이 어떻게 상대할 것인가 역시 무장애예술주간이 던진 의제인 것 같다.

문제적 작품의 탄생을 위한 밀도 높은 교류

 

오세형  무장애예술주간의 첫 번째 정체성은 교류 플랫폼이고, 두 번째는 창작역량 강화 또는 창작 활성화에 기여하고자 하는 목적이 컸다. 뛰어난 예술가의 작품을 알려주는 것도 좋지만 그들과 작업하고, 대화하고, 친구가 되는 장으로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담겨 있다. 그런 의미에서 향후 창작자들을 발굴하고 역량을 개발하고 여러 가지 정보를 얻으면서 성장할 수 있는 플랫폼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창작역량 강화는 모든 문화예술 지원기관의 염원이지만 쉽게 이루어질 수 없고 국제교류를 통한 창작역량 강화는 더군다나 어려운 과제이다. 창작역량이라는 말이 고리타분하기는 하지만, 키아라 베르사니 같은 매력적인 작가가 참여하면서 관심을 가지고 교류하고 소통하는 일이 반복되는 과정에서 예술가가 성장할 수 있다고 본다. 또한 이런 교류가 많아지고, 밀도가 높아지고, 거기에 많은 신진 예술가가 참여하고, 비장애 예술가들도 들어와서 같이 교류하면서 장이 넓어지면서 창작이 활성화된다고 생각한다. 지속적이면서 밀도 높은 국제교류를 이어가기 위해서 장문원이나 장애 예술계가 해야 할 과제는 무엇일까?

 

성무량  예술주간이 실험과 실패의 장이 되는 플랫폼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과정에서 흔히 말하는 ‘투 트랙’으로 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소위 말하는 유명 예술인이나 알려진 작품을 갖고 오더라도 그냥 보여주고 끝나는 게 아니어야 한다. 축제 전후로 교류가 계속 이어질 수 있도록 한국적 맥락을 만들어 내고 관심 있는 예술가가 있다면 이어주는 게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관점에서 네트워크를 계속 발전시키고 확장해가야 한다. 또 하나 신경을 쓴 부분은 기존 축제 구조에서 해오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예를 들면 프로그래밍 과정에서부터 팀원 모두가 참여하고 정보를 공유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물론 그 방식이 얼마나 현실적인 지는 다른 이야기이고, 앞으로도 풀어가야 할 숙제 중 하나이다.

 

김원영  예전에 영국과 교류하는 작업에 참여하며 개인적으로 많은 영감을 받았지만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 영국이 한국과 교류를 많이 하는데도 한국을 잘 모른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영국과 한국의 장애 예술 운동의 역사는 유사한 측면이 있다. 영국도 장애인 인권운동에서 출발하여 접근성 문제로 싸우며 장애 예술 운동으로 연결되었다. 국가에 대항하여 권리를 쟁취하는 과정에서 장애인들이 밖으로 나가게 되고 점점 권리를 획득해 갔지만, 여전히 장애인의 신체나 말하는 방식, 정신적 특성을 열등하거나 추한 것으로 바라보는 태도에 맞서는 장애인의 인정투쟁 전략이 장애 예술의 계기였다고 보아도 좋다. 거기서 출발해 창작단체가 만들어지고 성장하면서 운동성과는 조금씩 분리되고 우리가 얘기하는 소위 컨템퍼러리 예술로 통합되는 것 같다.

영국의 창작자들과 대화할 때 한국을 아직 장애인 권리 운동이 시작되지 않은 국가로 전제하고 있는 것 같아 항상 아쉬웠다. 어떻게 보면 교류가 일방적이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우리나라 장애인들은 이미 상당한 수준의 권리의식을 가지고 있고, 사회 모델이나 장애에 대한 다양한 담론을 알고 있다. 이제 법적인 권리 주장과는 다른 창작의 영역에서 어떤 작업을 하고 싶어 하는 장애 예술인이 있고 국가의 지원도 커지고 있다. 그런 맥락에서 시스템적이든 담론적이든 경험적이든 영국 장애 예술을 깊이 알고 싶은 지점들이 정확하게 교류될 필요가 있다. 영국과 더 많은 교류가 있어야 하지만 더 깊고 밀도 있는 교류여야 한다. 스탑갭댄스컴퍼니의 공연을 한번 보는 것을 넘어서서 스탑갭에 우리 창작자가 갈 수도 있고, 혹은 1~2년 동안 공동 프로젝트로 뭔가를 만들 수도 있는 방식의 교류가 필요하다.

 

박윤조  영국의 경우는 예술 생태계 자체가 단선적이지 않다. 남이 뭐라고 하던 계속하는 예술가들이 있다. 우리나라와 영국 간 개별 아티스트의 역량 차이는 크지 않을 수 있겠지만 그 예술가를 키워 내는 환경은 조금 다른 것 같다. 예를 들어 영국의 유명한 안무가인 호페쉬 쉑터는 소극장 더플레이스에서 시작해 중극장, 대극장으로 가는 과정에서 지원을 계속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 식으로 예술가가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 있었다. 영국도 대부분 공공기금으로 예술을 지원하는데 테이트나 로열내셔널시어터 등이 가지고 있는 사명 중 하나가 지역 단체와 같이 성장하는 것이고 협력방안을 굉장히 많이 모색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지속해서 활동해 온 단체들이 계속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방법에 대해 영국의 환경을 살펴보는 것은 유의미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김남수  김원영 선생님 말씀처럼 장애 예술은 사회적 예술이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예술에 대한 고전적 정의를 보면 한 사회가 가지고 있는 미신, 관습과 싸워서 좀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이 있다. 장애 예술의 경우, 사회적으로 어필하고자 하면 한국 사회가 가지고 있는 집단적 심리와 부딪힌다. 한국 사회는 도덕주의적 태도, 정치적 입장이 다를 때 단절하게 된다. 사회적인 차원의 운동과 장애 예술이 일정한 고리로 묶여 있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할 수밖에 없는 게 페미니즘 진영의 미투처럼 장애 예술은 한국 사회가 가지고 있는 집단 심리와 전쟁을 하는 상황이다. 이번 예술주간에서 백투백시어터와 필름 토크를 하면서 ‘교류 자체가 사적이면서 공적으로 친해지는 과정’인 것 같다고 느꼈다. 그 역할은 공연예술에서 많이 퍼져있는 ‘드라마투르기’에 포함되어 있고 장애 예술 창작역량 강화에 있어서 중요할 것 같다. 그 방향성은 사회적으로 좋은 작품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문제적인 작품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장애 예술인들은 자신의 위치와 위상을 날카롭게 느낄 수밖에 없다. 감각과 정치가 분리되지 않는 상황으로 가려면 장애 예술인들이 문제적 발언, 어젠다를 제시하는 발언을 해야 한다. 장애 예술인으로서 자기의식을 가진, 꼭 세련된 언어가 아니더라도 발언할 수 있는 사람과 대화하기 바란다. 예술주간에서 해외 예술가들이 이에 대한 힌트를 준 것 같다. 어떤 식으로든 그런 발언을 이어가고, 그런 발언에 주도권을 가지고 끌어가는 하나의 선례를 보여준 것이다.

 

오세형  장애 예술은 장애 운동에 뿌리가 있고 거기에 걸맞은 ‘문제적 작품’이 나와야 한다. 웰메이드 작품이 아니라 문제 제기를 정확히, 강력하게 하는 작품이 탄생했을 때 장애 예술의 메시지와 발언들이 사회적으로 유의미한 자극이 될 것이다. 사실 제도는 저항의 예술을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 있다. 처음에는 저항이 강력한 예술을 불편해하지만 나중에는 그걸 추앙하면서 재생산되기를 바라는데, 일회성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영리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생각도 많이 든다. 감각과 정치가 분리되지 않은 상태의 예술이 필요하다는 말씀이 인상적이다. 정치와 미학이 분리되지 않은 상태가 늘 장애 예술 미학에서 반복되고, 사람들이 감각적으로 당면하게끔 만드는 것이 지금 시대 장애 예술이 가진 특권이 아닌가 생각한다.

 
 

더 많은 기회와 더 넓은 대중 속으로

 

김원영  장애 예술은 필연적으로 수월성 혹은 탁월성의 문제와 마주할 수밖에 없다. 단순하게 말한다면, 장애 예술은 기존의 시각에서 ‘춤추지 못하는’ 사람들이 추는 춤의 예술적 가치를 주장하는 거다. 현대 예술계에서는 다양한 사람들이 가진 고유한 몸짓도 하나의 예술적 가치가 있는 작업이라고 쉽게 인정하는 듯이 보이지만, 그럼에도 좋은 작품과 안 좋은 작품은 어떤 식으로든 구별되고, 대중의 평가도 다르다. 장애 예술인이 가진 고유한 몸짓과 정체성이 있기에 그것을 충분히 예술적으로 잘 살려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서라도 훈련 기간과 경험이 필요하다. 제가 대학로에 가서 연극을 보기 시작한 것이 10년 안팎에 불과하다. 소극장에 가려면 계단을 못 내려가고, 심지어 예술의전당 같은 큰 공연장에서도 티켓을 끊으면 맨 구석 뒷자리 오퍼레이팅룸과 카메라 옆에서 봐야 했다. 지금도 얼마간 그런 현실이다. 장애 예술 관련 예산이 상대적으로 커졌지만 학교에서는 장애인 학생을 뽑지 않고 기관에서 장애 예술인을 채용하지 않는다. 물론 꼭 아카데미를 나와야만 좋은 예술인이 되는가는 우리가 가져야 할 질문이지만 어쨌든 그런 현실에 있고 이제 막 바뀌기 시작하는 시점이다. 규모 있는 축제나 국제교류도 필요할 수 있지만 그보다 멀리 보고, 장기적인 계획 하에 이어질 프로젝트가 더 절실하다. 장애가 있는 10대 청소년들, 서울이 아닌 지역에 사는 사람들, 전국 곳곳의 복지관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수많은 발달장애인에게 예산이 더 많이 쓰이기를 바란다. 내가 휠체어를 타는 10대 청소년이라면 자신의 몸에 대해서 받아들이기도 힘든데 연극이나 무용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란 쉽지 않다. 장문원에서 그들에게 더 많은 예술의 기회를 주고, 그중 창작자로서의 욕망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기회를 줘서 예술계에 들어올 수 있도록 하는 작업을 많이 했으면 좋겠다.

 

오세형  장애인이 예술을 접하는 현실, 예술교육을 받고 활동하는 현실을 연계 짓지 않고서 국제 행사를 진행한다면 내용 없는 성장이므로 재고되어야 할 것이다. 가장 근본적인 고민은 국내에서 좋은 작품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좋은 예술인이 나와야 하고, 좋은 작품이 생산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쉽지 않다. 지원금 뿐 아니라 교육지원, 창작 발표 기회 제공, 교류 등 여러 방식이 꾸준히 지속하여야 하고, 실제 현장과 맞닥뜨리면서 발굴하는 의미 있는 지원 등으로 작동되어야 한다. 그것이 제도만의 노력도 아니고 사회적 인식, 장애 운동의 확산 등 복잡한 사태 같다.

 

김남수  20세기 후반 우리나라의 굵직굵직한 공연예술 행사에서 서구의 컨템퍼러리 작품을 받아들이고 소화하는 방식이 종적인 역사성이 흘러 내려와 조감되는 게 아니라, 밑동이 잘린 채로 그 당대에 주목하는 형식이 대부분이어서 늘 아쉬웠다. ‘컨템퍼러리’라는 것을 통상 ‘동시대’라고 번역하지만 저는 ‘교차 시간성’이라고 번역한다. 현재와 과거, 과거 그 이전의 과거, 알 수 없는 시대와 계속 엮이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컨템퍼러리 아트를 항상 당대성으로만 소화하고 있다. 백남준은 현대예술을 “신화를 파는 예술”이라고 표현했다. 신화는 끊임없는 이야깃거리를 생산한다는 취지가 있다. 내년에 예술주간이 더 좋은 작품, 더 좋은 콘텐츠를 가져온다고 해도 저는 그다지 큰 가치를 못 느낄 것 같다. 다만 어떤 이야깃거리, 내러티브를 충실하게 풀어내거나 이것을 플랫폼 삼아 담론이나 장애 미학을 시도해야 할 것이다.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그것이 담론화되는 방식을 포스트 프로덕션(후반 작업)으로 시도하는 것이 마땅하다. 과거에 LG아트센터에서 컨템퍼러리 아트 공연을 즐기는 사람의 통계를 잡았는데 대략 3천 명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지금은 현저히 줄었을 수도 있지만, 3천 명의 관객을 상대하는 방식으로 향후 10년을 간다는 것에 저는 반대한다. 어떻게든 대중문화로 장애 예술의 담론이 됐든 알 권리가 됐든 범람해야 한다. 그런 시도가 있어야 한다.

 

성무량  지금 우리가 관심을 두고 있는 이 예술을 뭐라고 부를 것인가? ‘동시대’라고 할 것인가, ‘교차 시간성’이라고 얘기할 것인가 하는 화두는 중요하다고 본다. 올해 예술주간 ‘(색)다른 무대’에서 김월식 작가는 ‘와리즈아트’라 부르겠다고 했었다. 이런 새로운 담론이 다양하게 일어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때문에 관심 있는 평론가나 현장에서 고민하던 작가들이 들어와 함께 담론을 생성하고 현장을 견인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컨템퍼러리, 포스트 드라마 등 서구에서 지난 20년 동안 논의되어 왔던 담론을 발판으로 어떻게 그 다음을 갈 수 있는가를 고민해야 한다. 이제는 우리도 자신의 언어로 한국적인 컨템퍼러리를 시도해 볼 만하다고 본다.

 

김원영  저는 국제교류에 있어 아시아 지역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국이 장애 예술에 큰 풀을 가지게 된 것은 호주,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영국 연방으로 다양한 국가가 있고, 유럽 등에서 모이기 때문이다. 언어적, 지리적으로 고립된 우리나라에서 좀 더 많은 창작자와 함께 장애 예술계를 넓히기 위해서는 아시아 지역과 교류해야 한다. 베트남, 말레이시아, 네팔, 몽골 등에 예술에 관심과 열의가 있지만 활동하기에는 제약이 큰 예비 창작자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 아시아 지역에 있는 장애인들이 레지던시 등을 통해 우리나라를 방문하고 우리 창작자들과 작업한다면 우리 장애 예술계가 확장하고 발전하는 데 큰 도움은 물론이고 아시아 지역 장애인들에게 큰 기여가 될 것이다.

 

박윤조  예술주간을 통해 장애 예술 관객을 확장하는 게 건강하고 미래지향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소규모 작품과 컨템포러리 예술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들도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작품을 함께 소개하고자 했다. 동시대 예술은 드라마나 블록버스터 영화와는 다른 매력이 있지만 어떻게 관객의 관심을 끌어낼까 고민스러운 부분이 있다. 장애 예술도 마이너리티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동시대 예술도 관객 수에서 굉장히 마이너리티한 장르이자 문턱 높은 장르 중 하나인 것 같다. 모든 관객이 처음부터 작고 생소한 작품을 보지는 않을 테니 여러 가능성을 열어주는 측면이 있어야 한다. 영국의 공공예술기관은 예술과 관객을 연결하는 중간자 역할을 하는데, 공공기금으로 운영이 되다 보니 어떻게 세금을 내는 당사자들인 국민에게 이익을 돌려줄 것인지에 대한 숙제가 있다. 따라서, 여러 예술가가 작품 활동을 하고 그 작품을 많은 사람이 즐겁게 볼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예술과 대중이 어떻게 만날 수 있을지, 만날 수 있는 중간지점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도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다. 주류 예술과 장애 예술을 어떻게 연결해 줄지, 장기적으로 장애 예술이 주류 동시대 예술과 구분되지 않고, 포용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오세형  처음으로 진행했던 무장애예술주간 프로그램에 대해서 여러 가지 현실적 한계지점, 기대감, 가능성을 보게 된 부분까지 이야기해 주셨다. 미진했던 여러 현실에 관한 지적도 잘 수렴하여 내년을 준비하겠다. 그에 못지않게 거시적으로 창작 활성화라는 과제와 교류에 대해 심도 있고 근본적인 고민을 할 수 있는 논의를 해주셔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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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수

무용평론가. 미술기획자. 백남준아트센터, 국립극단,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에서 일했고, 제10회 서울미디어시티 비엔날레 콜렉티브 감독으로 활동했다. ‘확장된 안무’ 개념을 바탕으로 공연, 미술, 다원 등을 연결 짓고 있다. 2020 무장애예술주간에서 백투백시어터 〈이상한 땅〉 필름 토크 모더레이터로 참여했다.
kiapenu@gmail.com
(프로필 사진 ⓒ 양동민)

프로필_김원영

김원영

대학에서 법학과 사회학을 공부했다. ‘장애문화예술연구소 짓’을 만들고, 공연을 하고 장애 예술 조사연구 사업 등에 참여했다.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이라는 책을 펴냈으며 [한겨레신문]과 웹진 [비마이너](Beminor.com)에 글을 쓴다. 배우로도 활동하며 참여작으로 〈사랑과 우정에서의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에 관한 법률〉 〈인정투쟁〉 등이 있다. 2020 무장애예술주간 ‘(색)다른 무대’에서 움직임을 주제로 이야기 나눴다.
www.facebook.com/DisabilityTheoryAndArt

프로필_박윤조

박윤조

영국문화원은 국제 문화 관계와 교육기회를 위한 기관으로 6대륙 100여 개 국가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다양한 예술 교류 및 협력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주한영국문화원 아트디렉터로 재직 중이다. 한국의 기관들과 협업하여 한·영 큐레이터 교류, 무용 교류, 문학 기획자 교류, 런던도서전 문화 프로그램 등을 진행하였으며, 한국과 영국의 다양한 예술 기관과 예술가 간의 교류 및 협업을 지원해 오고 있다. 2020 무장애예술주간 영국 프로그램 개발과 선정에 참여했다.
arts@britishcouncil.or.kr

프로필_성무량(수정)

성무량

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서 일을 시작하여 대전예술의전당을 거쳐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다. 최근의 관심사는 컨템퍼러리와 장애 이슈를 중심으로 이전의 세상을 다시 바라보기이다. 2020 무장애예술주간 프로그램 디렉터로 참여했다.
mooryang@hotmail.com

정리. 프로젝트 궁리 최엄윤 PD   omyunchoi@hanmail.net

2021.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