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농아인밴드 농밴져스 〈우리들의 작은 이야기〉

들림에서 들음으로, 극복에서 성찰로

글. 전지영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음악평론가

결론적으로 참 괜찮은 공연이었다. 재미도 있었다. 일부 대형공연장에서 이루어지는 장애인 관련 공연에서 보이는 내용적 딱딱함과 형식적 경직성이 없어서일 것이다. 지역 내 활동가들이 과도하게 관객에게 가르치려는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여전히 있고, 간혹 지역정치인까지 인사하는 관행도 남아있긴 하지만, 그런 행사는 사실상 장애인 예술의 이름으로 자기 만족적 의욕 과시나 실적 쌓기 용도로 활용되는 측면이 없지 않아 보인다. 그때 장애인은 사실상 ‘열등한 타자’이자 활동가에 의존하여 성장하는 ‘미완의 불구’ 이미지로 ‘차별’받는다. 그에 비하면 이 공연은 그런 불편함도 없고, 공연장 내부 역시 ‘함께’ 만들고 성취하고 나누는 예술의 장으로 손색이 없었다.

 

어색함이 없는 것은 곧 편안함이고, 또한 음악적 완성도나 예술적 성취 이전에 ‘너와 나의 구분’ 자체가 불필요한 공간이라는 심리적 상태이기도 하다. 전철역에서부터 공연장까지 촘촘한 안내, 내부 방역수칙의 철저한 준수, 청각장애인 공연임을 감안한 수어통역과 화면을 통한 문자통역, 객석이 수용자로서가 아니라 함께 ‘구성하는’ 존재로서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게임이나 경품들) 등은 이 공연이 아마추어가 아니라 여러 경험이 축적된 행사로 느낄 수 있게 했다.

 

청각장애인의 음악이라는 특별함은 관람대상이라기보다는 공유하고 성찰하는 영역일 것 같다. ‘들림의 불편함’을 안고서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를 한다는 사실은 청각이라는 감각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분명 청각의 장애를 갖고 있지만 분명히 음악을 하며, 잘하고 못하고의 평가 기준이 문제가 아니라 음악을 통해 행복하고 소통하며 사회적 삶의 윤기에 이를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한 것이다. 음악은 ‘들림’(청각적 능력)을 전제로 한 예술이 아니라 ‘들음’(감성의 영역)을 전제로 한 예술이다. 하나의 음악은 모든 이에게 똑같이 들림에도 불구하고 그 음악이 모든 이에게 같은 의미로 다가가지 않는 이유는, 모두에게 자신만의 ‘들음’이 있어서 각자에게 해석과 의미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음악은 ‘들음’ 없이 설정될 수 없는 장르다. 그런 면에서 이 공연의 ‘주체’인 청각장애인들은 ‘들림’이라는 피동의 기표에서는 불편하지만 분명 ‘들음’의 능력을 구현한 이들이다. 장애인이라는 법적 존재로서 그들은 피동적 불편함을 갖지만, 능동적으로 듣고 그러한 들음 속에서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삶을 주체적으로 실천하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분명 들림과 들음은 다른 기표임을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주체’이다. 장애인을 타자로 설정한 많은 행사에서 보이는 불편함이 이 공연에서는 상당 부분 소거되었다. 청각장애인은 음악이라는 예술 장르의 ‘주체’로서 위치했으며, 이를 통해 인간의 청각을 ‘들음’이 아니라 ‘들림’이라는 수동적 의미로만 판단해온 선입견을 반성할 수 있었다.

 

여기까지만 서술해도 이 공연의 가치나 의미는 전달될 수 있겠으나, 조금은 장황한 사족을 덧붙이고 싶다. 그것은 여전히 이 공연의 의미를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식의 장애 극복 시선에서 찾고자 하는 모습 때문이다. 성취의 가치를 찾는 것을 비판할 수 없고 오히려 더 박수 칠 수 있다. 청각장애인으로서 ‘음악적 성취’는 남다른 성취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장애인 예술을 대할 때마다, 장애를 극복한다는 대의를 넘어 장애 자체의 성찰적 문제의식으로 나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주문 혹은 아쉬움을 꼭 피력하게 된다. 그 이유는 ‘장애 극복’의 당위가 ‘열등한 존재로서 장애인’의 설정을 정당화하거나 심지어 장애인차별을 추인하고 은폐하는 시선을 담고 있는 것으로 의심되기 때문이다.

 

아주 많은 경우 장애인 예술은 장애인을 ‘선의에 의존하는 존재’로 설정한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장애인은 무장애인의 선의에 의해 ‘장애인인데도 이렇게 할 수 있다’는 이른바 ‘장애 극복’ 프레임에 의해 조종당한다. 선의의 주체는 주로 지역 내 활동가들이며, 그중 다수는 ‘장애인식 개선’이라는 목표를 갖고 활동한다. ‘선의’에도 불구하고 이런 활동에서 장애인은 ‘예술의 주체’로 설정되지 않고 ‘교정의 대상’으로 설정된다. 장애 극복은 결과적으로 장애인의 대칭어로 정상인을 설정하는 것과 다르지 않게 된다. 인간이라면 누구라도 신체적, 정신적 결함이 없지 않다. 신이 아닌 한 인간은 완벽하지 않다. 원론적으로 인간은 누구나 장애를 갖고 있으며, 그런 면에서 인간은 누구나 장애인이다. 크든 작든 장애를 갖고 있으면서 그 장애를 통해 사회적 삶을 성찰하고 예술적 완성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이 예술을 하는 맥락이다.

 

완전무결한 인간에게 어쩌면 예술은 불필요하거나 상상될 수 없는 영역일 것이다. 불편을 통해 삶을 이해하게 되고 소통을 지향하며 표현의 본능을 불태우는 것이 인간의 모습이라면, 장애야말로 인간의 예술을 가능하게 하는 궁극의 심급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장애는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성찰의 대상이다. 그렇게 되면 ‘장애인 예술’은 단순히 장애인이 하는 예술이라는 소극적 의미를 넘어서, 장애 자체를 성찰하고 그를 통해 인간의 존재와 예술의 본질을 성찰하는 ‘장애 예술’로 나아가게 된다. 또한 장애를 빌미로 차별과 억압을 정당화해왔던 역사를 반성하는 실천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궁극적으로 차별 없고 억압 없는 세상이라면 장애 예술은 불필요해질 것이다. 모든 정책이 그렇듯이 장애 예술 또한 그 개념이 사라지는 세상을 지향하는 것이다.

 

문제는 사회적·법적 장애의 개념이 이런 성찰을 가로막으면서 ‘선의의 무장애인의 도움으로, 결여된 장애인이, 마침내 사회적 존재가 된다’는 프레임으로 장애인 예술을 개념화한다는 데 있다. 그리하여 장애인 예술은 예술의 범주가 아니라 복지와 치료의 영역에서 주요하게 다루어지며, 이는 ‘장애 예술’을 사유할 수 없게 만든다. 복지와 치료 대상으로서 장애인 개념은 “장애인 문화예술의 경쟁력 확보”라는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기관 미션에 배치되는 것이기도 하다. “신체적·정신적 장애로 오랫동안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서 상당한 제약을 받는 자”(<장애인복지법> 제2조 ①항)의 규정은 법적 개념이지만 사실상 예술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많은 논설에서 장애가 차별이 아니라 다름으로 이야기되고 장애가 임상적 개념이 아니라 사회적 개념임을 말하지만, 그럼에도 장애인 예술에 있어서는 장애인이 주체가 아니라 대상으로 설정되어 ‘우리’가 아닌 ‘그들’로 이야기되는 편향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리하여, “장애인의 주체적 표현이 존중되는 시선”이 아니라 “‘그들’을 기성 질서에 얼마나 많이 편입하느냐를 예술성취 가치판단 기준으로 삼는 시선”이 지배한다. 장애인 예술에서 장애인이 주체로 사고되지 않는 데는 장애를 성찰대상으로 보지 않고 극복대상으로 간주하는 관습적 사고가 존재한다. ‘선의의 우등한 무장애 존재에 의해 교정되는 결함 있는 존재’라는 암묵적 장애인 설정을 묵인해왔던 기존 사고관습은 신속한 폐기의 대상이다.

 

그런 면에서 농밴져스는 청각장애인이 ‘주체’로 선 장(場)임과 동시에, 장애에 관한 성찰을 가능하게 하는 새로운 기억생성의 장(場)이었다. 반면 여전히 장애를 극복과 치유의 대상으로 설정함으로써, ‘장애+예술’의 관계를 좀 더 냉철하게 사유할 과제를 안겨주기도 했다. 기존 장애인 예술의 불편한 프레임의 답습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장애 예술’을 성찰하는 다음 행보를 기다려본다.

우리들의 작은 이야기
농아인밴드 농밴져스 | 2020.11.21. | 드림홀

시립서대문농아인복지관 산하 농인문화예술단체 ‘슈퍼데프(SUPER DEAF)’에서 2015년부터 청각장애인 청년 밴드팀 ‘농밴져스’를 운영하고 있다. 소리의 진동을 느낄 수 있는 락 음악 커뮤니티인 농밴져스는 비장애인 보컬 1인과 청각장애인 6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삶의 이야기를 담은 노래를 만들고 이를 수어 뮤직비디오로 제작하여 유튜브에 공개하고 외부 및 정기 공연 무대를 갖고 있다.
· 농밴져스 www.facebook.com/deafvengers/

logo_s-01

전지영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이며, 200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등단 이후 비평 활동을 해오고 있다. 『비평과 정의, 그리고 전통』 등 단독저서 15권과 『음악, 삶의 역사와 만나다』 등 공저 6권이 있다. 서울시보조금심의위원, 경기도문화재위원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 시립서대문농아인복지관

2021.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