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리포트

백투백시어터 ‘캠프 – 함께 공연하자’

누구에게나 열린 평등하고 포용적인 연결

글. 이보람 장애 예술 연구자

호주 멜버른에서 1시간 거리인 질롱에 위치한 백투백시어터는 동시대를 반영하는 혁신적인 컨템포러리 공연을 만드는 극단으로 잘 알려져 있다. 〈작은 금속 물체〉(small metal objects, 2005), 〈푸드 코트〉(FOOD COURT, 2008), 〈가네샤 대 제3제국〉(Ganesh Versus the Third Reich, 2012) 등의 작품은 세계 유수의 현대예술축제와 공공극장에 초청되었고 지금까지도 투어를 하고 있다. 지적장애가 있는 앙상블이 공동 창작자이자 드라마터그로서 극단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가지만 그 어디에도 장애 극단이라는 꼬리표는 찾아볼 수 없다. 백투백시어터는 지난 30년 동안 연극이라는 매개체가 가진 경계를 넘어, 우리 자신과 타인에 대한 우리의 편견에 의문을 제기하는 작품으로 관객과 대화를 이어오고 있다.

지역 워크숍에서 창작 레지던시의 모델로

 

1980년대 말 인권운동과 함께 호주의 탈시설화 탈제도화가 시작되었고, 빅토리아 시대 수용시설에 고립되어 있던 많은 지적장애인이 사회로 유입되었다. 정부 지원정책 일환으로 질롱 지역의 장애 서비스 기관에서 창작 워크숍을 제공하던 연극 제작자 카스 앤더슨(Cas Anderson), 시각 작가 노엘 하트(Noel Hart), 재즈 뮤지션 로빈 게도르(Robin Gador)가 지적장애인과 공동으로 창작한 워크숍 결과물이 호평을 받아 호주 전역을 투어하게 되면서 백투백시어터(이하 백투백)가 시작되었다.

 

백투백은 지적장애 배우들 고유의 관심사와 시각이 작품에 반영될 수 있도록 비장애 예술감독뿐 아니라 무대 디자이너, 작곡가 등 모든 창작팀이 협력하여 공동집필-공동창작 과정을 거쳐 공연을 만드는 디바이즈드 시어터(Devised theatre)의 방법론을 통해 매번 새로운 공연을 선보였다. 또한, 현대 공연계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는 뛰어난 컨템포러리 극단으로 인정받는 동시에 극단의 모태인 지역극단의 면모를 유지하며 꾸준히 지역공동체와 연대하고 있다.

 

신진 장애 예술가를 양성하는 발판인 백투백 내의 비전문 예술극단 시어터 오브 스피드(Theatre of Speed)는 매주 수요일 질롱 지역의 지적장애 예술인 그룹과 청소년 그룹을 위한 워크숍을 진행한다. 워크숍에서 백투백의 전문 예술인과 신진 예술인 사이의 교차점을 만들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실험할 수 있는 자유로운 창작 공간을 제공한다. 이 워크숍을 통해 만들어진 작품 〈민주적 세트〉(The Democratic Set, 2008)와 〈레이디얼〉(Radial, 2016)은 세계 전역으로 투어하는 ‘실험적 창작 레지던시’ 모델이다. 지역 예술인들과 레지던시를 통해 만든 독창적인 협업 작품을 백투백에서 디자인한 무대와 세트에서 공연하고 이를 영상으로 담는다. 양옆에 들고날 수 있는 문이 있는 세트에서 참여자의 독특한 매력과 독창성이 발현되는 영상이 연쇄적으로 이어지는 〈민주적 세트〉는 지금까지 호주의 다른 도시를 포함해 캐나다, 영국, 홍콩, 독일, 스위스, 네덜란드 등에서 33곳의 공동체 예술인들과 만났다. 이밖에도 호주 지역사회와 교육기관에서 장기적인 멘토십과 인턴십을 유치하며 다양성의 가치와 다름의 미학을 활발히 나누고 있다. 2000년 ‘썸머스쿨(Summer School)’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백투백의 ‘캠프(CAMP, Come And Make Performance의 약자)’에서는 매년 공연창작에 관심 있는 이들을 위한 주말 집중 워크숍을 주관하고 있다.

이상하고 화나고 뜨겁고 아름다웠던 순간들

 

필자는 지난 2020년 3월 14일부터 이틀간 진행된 백투백의 ‘캠프–함께 공연하자’(CAMP, Come And Make Performance)에 참여했다. 코로나19의 공포에도 불구하고 호주 전역에서 장애인 46명, 비장애인 27명이 참가했다. 호주 전 지역에서 초대한 19명의 객원 예술인은 연극, 극작, 조명, 시각예술, 사운드, 움직임, 작곡, 실험예술 등 12개의 다양한 워크숍 프로그램을 제공했다. 참가자는 주말 이틀에 걸쳐 오전·오후에 1개씩 총 4개의 워크숍을 선택해 참여할 수 있었다. 아침에 다 같이 모여 준비운동을 하고 나서 세 그룹으로 나뉘어 2시간 반 동안 공연창작 워크숍을 하고 1시간가량 각 워크숍에서 준비한 공연을 보는 시간을 가졌다. 오후에는 다른 공연창작 워크숍이 진행되고 다 같이 준비한 공연을 즐기는 일정이 이틀 동안 반복되었다.

 

내가 참여한 첫 번째 워크숍 프로그램 ‘마크 딘의 연극(The Theatre of Mark Deans)’은 청소년 극단 탠드럼(Tandrum Youth Arts) 예술감독인 젊은 연출가 크리스 던스탄(Chris Dunstan)이 진행했다. 워크숍은 백투백 앙상블 배우 마크 딘의 30년 연기 인생을 찬양하며 참여자들과 함께 만드는 즉흥 실험극이었다. 마크 딘은 지금까지 33개의 백투백 공연에 참여했고, 세계 47개국에서 투어 공연을 했으며, 해외 공연 기념 티셔츠 입는 것을 좋아하고, 팔에는 문신이 있고, 1시간에 한 잔씩 커피를 마신다고 했다. 이 실험극 참여자들은 마크가 되어보는 이상한 경험을 했다. 모두가 마크의 티셔츠를 입고, 팔에 스티커 문신을 하고, 큰 화면으로 나오는 마크의 공연 장면을 돌아가며 연기해보고, 1시간에 한 번씩 커피를 마셨다. 워크숍을 하면서 가장 비현실적이면서도 환상적이었던 순간은 이 모든 과정에 마크 딘도 참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워크숍 참여자들은 그의 30년 연기 인생을 짧은 공연으로 만들어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선보였다.

 

두 번째 워크숍은 그리핀 극단(Griffin Theatre Company) 예술조감독 테사 레옹(Tessa Leong)의 ‘분노의 방(Rage Room)’이었다. 테사는 워크숍을 시작하며 참여자 간의 상호작용을 제한했다. 불평등, 가족, 기후변화, 전화 연결이 안 되는 은행 콜센터, 나를 무시하는 사람 등의 주제를 주며 우리를 화나게 하는 것들과 자기 안에 존재하는 분노에 집중하게 했다. 그리고 한 사람씩 통제 된 환경에서 깨어나 비명을 지르고 파괴하고 극도의 감정 상태에 대한 사회의 규칙을 탐구하는 장소로 묘사된 ‘분노의 방’으로 초대되었다. 분노의 방에 들어가기 전에 듣고 싶은 노래를 선택할 수 있었고, 3분이라는 시간이 허용되었다. 방에서 나오는 참가자에게 테사는 “혼자 있고 싶어요?” “안아줄까요?” “차 한 잔 할래요?”라고 물어보며 다른 사람과 경험을 공유하기를 권했다. 워크숍이 끝나고, 방 안에 있던 카메라에 녹화된 참여자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포효하고 때려 부수며 화를 표출하는 모습은 아이러니하게도 보는 이에게는 큰 즐거움을 선사했다.

 

두 번째 날 아침 질롱에는 비가 내렸고 어두웠다. 세 번째 워크숍 프로그램 ‘조명과 공연의 대화(A Conversation Between Performance and Light)’와는 잘 맞는 날씨였다. 호주 빅토리아주의 포용적 극단 라우커스(Rawcus)의 예술감독 케이트 술란(Kate Sulan)과 조명감독 리차드 배브레(Richard Vabre)와 함께 공연 창작에서 조명의 역할을 배워보는 시간을 가졌다. 다양한 조명기기에 대해 배우고, 직접 조명장치를 조작해보기도 하고, 빛과 음악에 반응하며 즉흥적으로 공연을 만드는 작업을 했다. “지금 기억나는 빛이 있나요?”라는 질문에 전동 휠체어의 헤드라이트를 켜고 사람들 주위를 빙그르르 돌던 참가자, 서로의 움직임을 따라가며 빛과 어둠 속에서 춤추며 공연하던 장면이 떠오른다.

 

마지막 네 번째 워크숍은 시어터 오브 스피드 단원이자 시각 작가로 알려진 로버트 크로프트(Robert Croft)와 퍼포먼스 아티스트이자 큐레이터인 리사 셸톤(Leisa Shelton)의 ‘호흡 그리기(Drawing Breath)’였다. 참여자들은 누워서 옆에 놓인 종이에 목탄화로 호흡을 그려보기도 하고, 빠르게 느리게 뛰어다니며 벽과 책상 위에 놓인 큰 종이에 호흡과 몸의 흔들림을 자신만의 선으로 남겼다. 삼삼오오 모여 종이에 목탄가루를 뿌리고 문지르고 공간과 순간을 담는 시간도 가졌다. 우리가 종이에 남긴 선과 얼룩은 전시되었고, 그 일부를 담은 사진과 영상도 이차적인 작품으로 전시되었다. 워크숍 참여자들은 관객이 도착하면 핸드폰 손전등 기능을 사용해 종이에 목탄화로 남겨진 우리의 호흡을 작은 빛으로 비추는 퍼포먼스를 했다.

함께 만드는 백투백 캠프

 

백투백 캠프의 특징은 백투백 앙상블뿐 아니라 호주 각지에서 활발히 창작 활동을 하는 객원 예술가들이 초대되어 워크숍을 기획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공유하는 새로운 아이디어와 문제의식 그리고 창작 방법론을 함께 경험해보고, 백투백 특유의 공동창작법을 바탕으로 참여자 모두가 창작자가 되고 배우가 되고 관객이 된다. 예술적 체험 과정을 통해 자기표현, 자기탐구와 발견, 그리고 공감 능력을 자연스럽게 학습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캠프(CAMP)는 전문적이지만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철저히 평등하고 포용적인 협업 공간이다.”

 

2020년 코로나19로 백투백 역시 해외 투어가 전면 취소되면서 지난해 처음으로 비대면 온라인 ‘캠프 인터내셔널(CAMP International)’을 개최했다. 10월 2일부터 4주에 걸쳐 매주 금요일에 세 번의 워크숍을 열었다. 댄스, 사운드 디자인, 시각미술, 부토, 작문 등 다양한 장르의 워크숍을 위해 백투백 앙상블과 객원 예술가 등 15명이 모였고, 26명의 장애인과 15명의 비장애인이 참여했다. 베를린, 브뤼셀, 밴쿠버 등 해외 각지에 기반을 둔 객원 예술인을 초대했고, 참가자들 역시 호주뿐 아니라 네덜란드, 한국, 독일, 벨기에, 스코틀랜드에서 참가했다. 이 캠프 역시 자신만의 독창적인 창작 세계를 가진 객원 예술인과 기발하고 창의적인 참여자의 만남을 주선하며 창의적인 소통을 유도하고, 창작과 협업의 기회를 제공했다.

 

장애 여부와 창작 활동 경험 유무에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캠프’는 백투백시어터와 현대 예술 공동체 그리고 장애 (예술) 공동체를 유기적으로 연결한다. 무엇보다 그 안에서 공동체 구성원이 서로 연결될 수 있는 ‘만남의 장’ 역할을 하고 있었다.

Come And Make Performance (CAMP) 2019 (©PiaJohnson)

Come And Make Performance (CAMP) 2020
[영상 출처] 백투백시어터 비메오 채널

7트렌드리포트_이보람프로필

이보람 현재 남호주대학교에서 문화예술경영학과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관객개발, 문화다양성, 축제경영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장애인 예술 접근성 향상, 장애 예술인 전문성 개발, 장애 예술 국제 교류 프로그램 유치 및 연구 중이다.

boram.Lee@unisa.edu.au

메인사진. Come And Make Performance (CAMP) 2017 (ⓒPiaJohnson) 

사진제공. 백투백시어터

2021. 02월호